충청남도 공주는 한국교회 초창기부터 교회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내포의 사도 이존창에 의해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이래 박해를 피해 선교사들과 신자들이 이곳을 찾아 은신하였고, 감영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하기도 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공주 황새 바위에서 순교한 이존창ㆍ이종국ㆍ이국승을 비롯 1865년부터 1879년까지 공주에서 약 2백30명이 순교한 것으로 기록상 나와 있으나 무명 순교자까지 함하면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또 깊은 골짜기를 따라 신자들이 피신한 곳들이 산재해 있어 순교지이자 은신처로 교회사를 장식하고 있는 공주는 20여명의 성직자와 수 십명의 수도자를 배출, 대전교구에서는 합덕 다음의 성소의 온상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주본당(현 공주 중동본당)은 1897년 창설되었으나 그 이전부터 박해를 피해 형성된 교우촌을 중심으로 신자활동이 이뤄졌다. 다블뤼 안신부도 1846년 「빠리」의 성모성심회를 도입, 공주 수리치골에서 창설 기념미사를 봉헌하기도 했다.
공주지역이 성소의 온상이 될 수 있었던 요인 중에는 순교자들의 피의 댓가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으며 특히 집안에서 성소자가 많이 배출됐기 때문에 가정 성소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러 은신처 중에서 「요골」과 「사랑골」공소가 4~5명씩의 성직자를 배출, 그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68년 유구본당이 공주본당에서 분리되면서 요골과 사랑골 공소는 유구본당 소속으로 바뀌었는데 요골공소는 원래 공주 본당의 전신이었다.
1897년 4월「빠리」외방전교회 진베드로 신부가 이곳에 초대주임으로 부임, 사목활동을 전개하다가 공주읍에 성당을 건립, 이전했다.
울창한 숲속에 들어서있는 요골은 병인박해때 신자들이 피신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순교자의 후손인 김씨ㆍ이씨ㆍ유씨 집안이 이곳으로 이주, 교우촌을 형성했고 그 후 이곳에 신자들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후에 성직자 3명을 배출한 구씨 집안이 들어왔다고 한다.
요골 신자들 중에 좀 여유가 있는 이들은 담배 농사를 짓고 어려운 이들은 화전을 일구어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하느님을 믿고 있다』는 긍지 속에 기쁘게 신앙생활을 해나갔다. 봄판공ㆍ가을 판공 때나 만날 수 있는 신부를 영접하기 위해 신자들은 며칠 전부터 정성들여 깨끗한 옷을 장만하는가 하면 교리문답을 외우느라 밤새는 줄을 몰랐다고 한다.
또 각 가정별로 아침 저녁 가족들이 함께 모여 조ㆍ만과를 바치고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성경직해」등을 구입하는가 하면 자녀들에게 선조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성소자가 자랄 수 있는 신앙 가정 분위기를 형성해나가기도 했다.
요골공소 출신 김윤상 신부(서울 후암동본당 주임)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게 고조 할아버지의 순교사회를 들으면서 성소의 싹을 키웠다』고 말하고 현재ㆍ요골공소 회장인 구자몽(야고보ㆍ58)씨는 『성서는 귀중한 것이니까 잘 보관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6ㆍ25때는 항아리 속에 겨를 넣어 땅속에 엎어 묻으면서 지금까지 무사히 보관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사랑골 공소는 「사랑」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아 교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박해를 피해 이곳에 들어온 신자들은 옹기를 구우며 생계를 유지했고 옹기를 각 지방으로 팔러 다니며 전교는 물론 신자들간의 연락책을 맡기도 했다.
사랑골 공소에는 특히 유씨집안 출신 성직자가 4명이나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현 사랑골 공소 회장인 유봉남(아릭스ㆍ60)씨는 『옹기를 구우며 신앙을 지켜온 선조들의 얼을 이어받지 않는다면 우리도 이곳을 벌써 떠났을 것』이라면서 『이농 현상으로 점점 피폐돼가는 공소를 지탱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에 남아 옹기 굽는 일을 계속 하겠다』고 순교자 후예로서의 각오를 보였다.
자연경관이 좋아 여름방학 때면 도시 본당 학생들이 연수차 많이 찾아오고 있는 사랑골 공소는 이들에게 신앙선조들의 얼을 심어주면서 성소에의 싹을 키울 수 있도록 피정의 집 등을 마련, 편의를 제공하고 싶으나 공소신자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 애를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요골ㆍ사랑골 공소 외에 신앙의 고장인 공주의 많은 공소들이 자료부족으로 자세한 내용을 알 길이 없으나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켜온 은신처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소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을 알 수가 있다.
유구본당ㆍ공주교동ㆍ중동본당 등 공주출신으로 확인된 성직자는 다음과 같다.
▩유봉운(대전성모병원장) 유성숙(유성 주임) 유재식(재외국) 유윤식(진잠 주임) 구선회(서울 청파동 주임) 구자오(재외국) 구자륜(장항주임) 김윤상(서울 후암동 주임) 김병상(인천 주안1동 주임) 윤석빈(성환 주임) 이종대(신합덕 주임) 우제국(가톨릭대 교수) 변갑철(공세리 주임) 최병석(청양 주임) 윤여옥(군종) 윤성균(군종) 이계창(대사동 주임) 백승옥(서천 주임) 유영소(신례원 주임) 백성수(도룡동 주임) 김영곤(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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