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ㆍ체외수정과 혼인과의 관계
성교에 의한 출산을 단절하는 인공수정과 체외수정
우리에게 윤리적 문제로 관심을 집중케 하는 것은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이 모두가 부부의 성교에 의한 출산을 단절시킨다는 점이다. 사실상 배우자간의 성교의 정당한 행위는 그들 사랑의 육체적인 향유이며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에서 서로 결합하고 서로의 생활과 공동관심사를 나누는 것이다. 설사 아기를 갖겠다는 서로의 희망으로 결혼했을지라도 이때의 성교는 근본적으로 사랑의 행위이지 기술적인(artificial) 출산의 연습행위는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를 갖겠다는 그들의 희망이 다행히도 성취된다면 이들에게 있어서 아기는 부모의 인격적 행위(예컨대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책임있게 서로를 포용하는)에 의한 선물로서 받아들여질 것이다.
따라서 부부의 출산의지는 부부의 공동생활이 가장 생생하게 표현되는 깊은 인격적 행위의 연장(extensio)이며 부부의 전생활의 연장인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성교에 의한 출산을 단절시키는 행위는 윤리적인 면은 물론이고 물리적이며 생물학적인 면에서도 비정상적이고 비자연적인 출산 행위인 것이다.
배우자간의 성교에 의한 출산에 있어서 결정적인 선택행위는 바로 感性的인 성적결합과 자녀의 출산. 이 둘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의지적인 행위이며 따라서 그러한 의지적 행위는 어떤 기술적 방법에 의존하여 성교행위를 보충함으로써 출산하는 경우(이는 보조수정: assissyed insemination을 의미한다)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혼인 밖에서의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의 경우는 성교에 의한 출산에 비해. 두가지(감성적인 성적결함과 자녀출산)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AID나 IVF에는 정액을 산출하고 제공하는 행위를 포함하여 정자와 난자를 단지 결합시키는 행위. 혼합된 산출물(정자와 난자의 결합)을 자궁에 주입하는 행위. 그리고 주입을 허락하는 어머니의 선택 행위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선택자체는 출산의 근본적인 의미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며. 결국 인격 대 인격(person to person)이라는 상호 인격적 행위의 특성을 지니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IVF에 의한 어린이는 혼인적 결합에 의한 선물 혹은 성행위로 인한 매우 生動的인 공동생활의 파트너에 의한 자녀가 아니라. 오히려 생산품(making babies)의 일종. 즉 자기의 부모에게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조작으로 인해 출생한 아기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인간 출생의 가장 합리적인 조건은 결혼에로 불리운 배우자들이 자녀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자기정체성(identity) 을 발견하고 설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그들만의 성적 결합」-목표나 서약과 사명으로 육체적으로 결합하는-에 달려있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을 단절시키는 행위는 인간의 육체적 생활과 역량들을 비윤리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胎兒의 「살 권리」와「혼인한 부부의 참 자녀로 태어날 권리」
지금까지 우리가 인공수정 및 체외수정의 윤리성 문제를 지적한 것은. 인간생명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나아가 정의를 인식하기 위함이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새로운 충격을 주는 「태아의 권리」라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라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린이들은 혼인한 부부의 「참된」자녀로 출생할 권리가 있으며. 따라서 살 권리 뿐만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손상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AID나 IVF행위에는 이러한 권리가 분명히 결여되어 있다. 즉 AID나 IVF행위는 불임부부에게 큰 효과라는 점과. 우생학적인 개가라는 점에서 고려되었을뿐. 적어도 태아의 권리라든가. 남편과 아내의 상호위탁과 책임이 출산을 위한 정당하고도 아름다운 필수조건이라는 지배이념을 평가 절하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 사회의 법은 몇 세기 동안 가정에 대한 명백한 인식을 부여 해왔다.
예컨대. 혼인한 부부와 그들 자녀를 위하여 혼인과 가정에 법적 지위를 부여한 것은 정의와 부여한 것은 정의와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 없다. 즉, 가정이란 어떤 것보다도 더 넘어서는 책임이라는 면에서. 그 구성원을 포용하는 사회의 기초적인 단위인 것이다.
혼인 파트너의 서약은 「슬프거나 기쁘거나.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간에」부부에게 닥쳐오는 불행에도 불구하고 서로 나누는 것이 근본 정신임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아기의 출산은 그러한 서약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어린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아기를 지우려 한다거나. 혹은 아기를 임의로 선택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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