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존재 문제에 대해서 세번째의 명제는「신은 필연유」라는 개념이다. 이 우주에 가득차 있는 모든 존재는「우연적인 존재」(偶然的인 存在,esse accidentale)이다.「우연적인 존재」란 말은 그것이 어떤 우연성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런 존재있으며 우연성에 의해서 소멸될 수도 있는 존재들이다. 다시 말해서「존재의 우연성」이란 말은 그것이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
神은 必然的인 存在
그런데 이 우주에 우연적인 존재만이 산재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모든 것이「무」로 변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연적인 존재가 계속 그들의 존재를 연명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우연적인 존재를 존재케한 필연유(esse necessarium)를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서 없을 수 없는 필연적인 존재가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우연적인 존재가 명맥을 이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철학적인 사고 내용이지만 쉽게 풀이해보자.
들판에 해마다 다른 곡식들이 생기고 없어지고 항상 되풀이 된다.
이것이 되풀이되기 위해서는 이런 존재들을 있게도 하고 없게도 하는 농부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철학에서는 우주에 충만된「존재의 필연성」이 있어야 한다. 이 필연적인 존재가 곧 신이란 뜻이다.
眞善美의 實體있어야
모든 존재들은 그 양상과 그 우열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자동차의 모습도 소형 중형 대형의 여러 가지 등차가 있듯이 모든 존재 특히 진 선 미의 초월적인 개념을 가진 존재들에 대해서 등급이 있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더 아름다운 것, 덜 아름다운 것」이 있고 「더 착실하고 덜 착한 것」이 있다. 그렇다면「더」또는「덜」을 말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일까?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이것보다 저것이 더 아름다와」또는「이 사람보다 저 사람이 더 착해」이런 표현을 하는데 어디에 기준을 두고「더」혹은「덜」이란 말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쉬운 예를 들어본다. 국민학교 5학년 반에서 선생님이「코끼리」를 그려오라고 학생들에게 숙제를 주었다.
학생들은 제각기 코끼리 그림을 그려왔다. 선생님은 그 그림을 놓고 채점을 한다. 어떤 그림은 90점 어떤 것은 60점이 된다. 어디에 기준을 두고 90점과 60점이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서슴없이 코끼리 실물이 기준이 되어 그 그림이 실제 코끼리와 얼마나 유사한가에 따라 점수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론이다.
그렇다면「아름답다」「착하다」고 할 때 「아름다움」의 실체, 「착함」의 실체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코끼리의 실체가 있어야 하듯이 진 선 미의 근원적인 실체가 있어야 진선미의 우열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 선 미의 원천, 다시 말해서 진선미의 실체, 진선미 그 자체가 있어야 한다. 이런 진선미의 실체를 우리는 신이라고 할 수 있다.
神은 眞善美의 절대기준
앞서말한 코끼리 그림의 경우 그림을 채점하는 선생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코끼리의 실물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해본다. 그 선생님은 그 그림을 채점했다고 하자! 그 선생님은 코끼리 실물이란 객관적인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그 채점은 아무런 가치없는 평가가 되고 만다. 1백점으로 되어 정확한 평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선미의 절대기준인 신을 모른다면 우리는 어떤 아름다움을 놓고「더 아름답다」「덜 아름답다」고 할 자격이 없다. 윤리선에 대해서도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없다면 누가 감히 선악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신 없는 윤리도덕은 알맹이 없는 도덕율이 될 수 밖에 없다.
신 없는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예술의 그 실체가 없다면 어디에 기준을 두고 예술을 키워나갈 수 있겠는가? 절대기준이 없는 삶, 기준이 없는 선악의 판단, 기준이 없는 아름다움은 모든 것이 상대적인 것으로 끝나버린다. 신이 없는 사회, 신이 없는 예술은 끝내 허무로 치닫고 만다. 인간의 판단은 극히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설악산의 아름다운 단풍을 보고 인간은 감탄을 한다. 그 아름다움을 표현해서「이거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구나!」한다. 그런데 한편 아름답게 표현된 정물화를 보고서 인간은 감탄하면서「이거야말로 꼭 실물 같구나」한다. 그러니 그림과 실물의 차이가 무엇이며 어느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이냐?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에 물질적인 세계에서 물질적인 아름다움과 행복을 추구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다운 삶,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초월적인 개념은 진선미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 진리를 추구하고 선한 윤리를 찾고 드디어는 아름다움을 찾는데 진정 인간의 초월성이 있고 인간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내적충족을 채울 수 있다면 소위 진 선 미의 그 원천과 실체인 신을 모른다면 인간의 지성생활은 그 바탕부터 흔들리게 마련이다.
相對 기준만으론 혼란 자초
인간이 품고 있는 내적 생활의 바탕인 진 선 미의 원천이요 실체인 신을 안다면 인간의 정신적인 지주가 확립되고 따라서 상대적인 인간 기준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진정 인간의 초월적인 모습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이 부르짖는 진선미의 세계를 찾아 살기위해서도 신은 존재해야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