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소외의 문제에 대해 보다 폭넓은 사목적 배려가 따라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그러나 정작 사목실천의 장이 돼야할 「본당」들은 아직도 수동적인 입장에서 바라만 볼 뿐이며. 오히려 물질적 풍요와 본당의 대형화 추세에 밀려 점점 더 무관심해져 가고있다는 지적이 많다. 따라서 본지는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본당상 구현을 위해 서울시내 대표적인 「가난과 소외의 현장」을 찾아 본당과 연결시켜 보는 특별기획란을 마련. 그 첫번째로 신림 7동 도시빈민지역과 난곡동본당(주임ㆍ손영일 신부)과의 접맥점을 모색해 본다.
신림동 4거리에서 난곡행 시내버스를 타고 10여분 달리다 종점에 내리면 제일 먼저 산등성이 하나를 가득채운 판자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이름하여 난곡동(행정구역 명칭으로는 신림 7동) 달동네. 70년대초 정부의 무허가 빈민촌 강제철거 정책에 밀려 도심 철거민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형성된 이곳은 인구 3만여명이 거미줄처럼 얽혀 살아가고 있는 서울의 대표적 빈민촌이다.
주민들중 극소수가 번듯한 「내집」에서 살며 알부자 (?)로 소문나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지역 빈민들처럼 막노동ㆍ행상ㆍ파출부 등의 일을 하며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이고 5.6명의 식구가 방한칸에 사글세로 살아가는 경우도 상당수가 된다.
이들은 내집 마련. 자녀교육 등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나서는 등 삶의 의욕이 무척 강한 반면 「밑바닥 인생」이라는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 때문에 심한 소외감과 좌절감을 안고 있으며 때로는 분노의 형태로 표출하기도 한다.
이런 지역일수록 교회도 많이 들어서게 마련이어서 판자촌 윗동네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10여개의 십자가 철탑이 경쟁적으로 우뚝 솟아있음을 보게된다. 일종의 분출구로서 모든 위로자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주민들 중에는 교회가 자신들을 선교의 대상이나 자선의 대상으로 삼을 뿐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도 상당수에 이르러 뭔가 교회의 역할이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한다.
난곡희망협동회. 76년 AFI (국제 마리아의 형제회) 출신의 김혜경 (사라) 씨가 서울대교구의 협조를 얻어 주민자치 의료조합으로 설립한 이회는 바로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는 이 지역에서 교회가 해해야 할 일을 명확히 보여준 표본사례로 꼽힌다.
수녀와 함께 산동네를 찾아다니며 폐병환자들을 치료하던 김사라씨가 주민들에게 조직적인 의료모임을 갖자고 권유. 76년설립 당시 1백18세대 주민들의 참여로 시작된 이 회비는 서울대 의대 가톨릭학생회의 의료봉사에 힘입어 설립 10년만에 주민 3분의 1이 가입한 명실상부한 주민공동체 모임.
처음 월 회비 1백원에서 2백원. 3백원. 5백원으로 오르는 동안 기금도 1천2백여만원이 적립돼 지난해 중고생 14명에게 제1차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금년 7월중 이 기금으로 교회내 타의료모임과 공동출자. 신림동 4거리에 2차 진료소인 「성요셉의원」을 설립하는 큰 일을 해냈다.
그러나 협동회가 이룩해낸 업적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주민들 사이에 공동체 일치감을 싹트게 한 것과 교회의 도시빈민사목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한 것을 들 수 있다. 물론 여기에 난곡동본당과의 연결이 큰 힘이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난곡동본당은 사목회의 사회복지 분과를 통해 산동네를 직ㆍ간접 지원하는 한편 82년부터 산동네 어린이들을 모아 여름성경학교를 개최하는 등 본당공동체와 지역공동체를 연결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이처럼 협동회와 본당이 상호협조를 통해 빈민사목의 이정표를 만들어 왔지만 본격적으로 사목이 시작된 시기는 지금부터라는 것이 주위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김혜경씨는 『이제는 이해차원을 넘어 본당에서 빈민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신앙적으로 뒷받침 해 주어야 할 때』라며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 권리와 문화를 지켜주기 위해선 단순히 이웃돕기 차원을 벗어나 일상문제에까지 형제적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구 도시빈민협회 간사 양권식 신부도 전적인 동의를 표하면서 『빈민사목은 본당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며 그 본당은 빈민들이 수평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교회가 가난과 소외의 문제에 보다 원초적으로 접근하는 것과 함께 스스로 가난해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가난으로부터의 나눔」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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