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주는 너무나도 정확한 질서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찾아오고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는 계절의 질서 속에서부터 아침마다 에누리 없이 찾아오는 새 아침. 이러한 대자연의 질서 속에서 우리는 살고있다. 이 지구가 1초도 틀림없이 공전 자전하는 이우주의 신비. 그 많은 별들이 충돌없이 우주를 장식하고 있다는 이 사실을 놓고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것을 질서의 설정자 없이 온전히 「우연」으로만 돌릴수 있겠는가?
우주는 신 존재를 입증해줘
서울 남산엘 올라가보라! 거기에서 우리는 서울 거리를 다니는 무수히 많은 자동차들을 볼 수 있다. 그 차들은 빨간불이 있으면 정지하고 파란불이 켜지면 움직이고 우회전 좌회전한다. 그 차들의 질서 그것이 우연히 이루어진다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그 질서는 곧 자동차 안에 있는 운전사들의 머리에서 나온다. 생각하는 지능을 가진 운전사들의 조종으로만이 그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우주에 가득한 무수히 많은 대자연의 질서를 조종하는 운전사가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우주의 통치자를 우리는 신이라고 한다. 우주의 질서를 부여한 신은 절대적인 지능의 소유자가 아닐 수 없다. 지능의 소유가 아니고 어떤 우연으로는 결코 설명이 안 된다.
여기에 가나다가 쌓여있는 활자가 한 보자기 있다고 생각해 보자! 누가 그 활자 보자기를 터뜨려 땅에 그 활자들을 던졌다고 생각하자. 아무런 생각없이 던져진 그 활자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시가 될 수 있겠는가? 한줄기 시가 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인간이 그 시의 내용에 따라 활자를 골라서 뜻을 맞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 우주의 신비와 질서도 그것을 만든 지능의 소유자가 있어야 한다. 아무런 근거없이 우연히 이렇게 정밀한 질서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이렇게 우주의 질서를 보아서도 이 질서의 설정자인 신은 있어야한다.
우주질서를 만든 이가 신
그리고 이 우주는 던져진 존재로 끝나지 않고 계속 그 존재 의미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오늘도 신은 이 우주를 계속 통치 지배하고 계신다. 공중을 날으는 인공위성이 그 궤도에서 탈선되지 않고 그 목적대로 진행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인공위성을 띄운 과학자들이 계속 조종을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우주는 한 번의 창조로 끝나지 않고 「계속적인 창조」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오늘도 매순간 창조주의 다스림과 보살핌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신의 능력은 전 우주에 가득차 있으며 우주의 운동과 모든 질서의 원동인으로 신은 우리에게 현존하는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방안에 전기불이 있다는 것은 그 뒤에 그것을 있게하는 발전소가 있어야하며 그 발전소는 계속「발전」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온몸에 피가 돌며 육신의 기능이 연속될 수 있는 것은 그 뒤에 계속 심장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성인의 마지막 명제인「우주질서 상으로 본 신의 존재」에서 우리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첫째는 우주의 질서는 이것을 설정한 신의 존재가 있어야하고 그 신은 가장 완벽한 지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대우주 질서는 곧 신의「절대적인 지능」의 능력을 보여준다.
두번째. 신은 계속 이 우주를 통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존재는 신의 현실성을 가장 왼벽하게 보여 준다는 결론이다.
이상 다섯 명제를 결론하면 신의 존재는「인과율」의 원리로 집약된다.「인과율」이란 말은 철학적인 용어가 되어 어렵게 들리지만 우리의 생활 전반에 이것은 적용되고 인간생활과 우주의 모든 질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극히 보편적인 진리이다
시골 농부들이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피땀을 흘려 그것을 열심히 가꾸어야 가을에 결실이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 당연한 이론이 아닌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를 해야 좋은 성적이 나온다는 것은 반박할 여지가 없는 생활이론이 아닌가! 이것을 어렵게 표현해서「인과율」이라고 한다.
우리는 원인이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는 지당한 원리 속에 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이든「저절로」되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흔히 우리는 그 원인을 모를 때「저절로」되었다고 말한다.
벽에 붙어있던 달력이 바람에 날려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 달력이 「저절로」떨어졌다고 한다. 어쩌다 발에 부스럼이 생겼다. 이것을 보고「이게 저절로 생겼다.」고 한다.
실상 이 세상사가 저절로 될 수 있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죽자고 일을 하고 살아가는데 아웅 다웅 다투어야 하겠느냐? 「일하지 않아도 돈뭉치가 하늘에서 저절로 뚝뚝 떨어질 텐데…!」 이렇게 금덩어리가 저절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살 자격이 없다. 우리가 매일 먹는 살 한톨도 저절로 떨어지지 않는데 어찌 저 하늘에 해와 달이 저절로 생길 수 있으며 내장산의 아름다운 단풍이 어떻게 저절로 될 수 있겠는가?
원인 없는 결과 있을 수 없어
또한 한편 세상사가「저절로」된다면 우리는 하루도 불안해서 살 수 없다. 언제 내목이 댕그렁 저절로 떨어질지 모르고 언제 내 다리가 저절로 떨어져 달아날지 모르니 불안해서 살수 없다.
결론컨대.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이것을 존재케한 창조주가 있어야 하고 오늘도 변함없이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는 질서도 신의 통치임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우리의 일상사에서는 소위「인과율」이란 원칙하에서 현명하게 처신하면 어찌 대우주의 신비 앞에서는「신이 정말 있는가?」하는 어리석은 표현을 할 수 있는지? 인간은 정말 가장 현명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동시에 가장 어리석고 바보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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