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30명 수녀50명. 언양 지방에서 이렇게 많은 성소자가 배출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교회가 아직은「성소의 풍년」을 계속해서 맞고 있지만 현재의 서구교회처럼 언제「성소의 가뭄」시대를 맞을지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성소 못자리의 토양의 성분을 한번 짚어볼 필요성은 있을 것이다.
언양지방 뿐 아니라 본 연재물「성소의 온상」에 이미 언급된 다른 지방도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먼저 거의 대부분의「성소 못자리」가 박해시대부터 출발한 점이다. 박해시대 신자들의 천주교 신앙은 문자 그대로「삶의 전부」였다. 곧 죽음과 맞바꾸던 것이었다. 목숨을 걸고 천주교를 믿었으므로 기도생활이나 수계범절에 있어 철두철미했다.
특히 사제수가 매우 적어 고백성사는 1년에 겨우 한두번 정도 받는게 고작이었다. 때문에 신자들은 칠죄종(七罪宗=교오ㆍ간린ㆍ미색ㆍ분노ㆍ탐도ㆍ질투ㆍ나태)을 근간으로 하는 죄악을 범치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으며 덕분에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을 것으로 교회사가들은 보고 있다.
또 박해시대 때 신자들은 무리를 지어 산골로 숨어든 관계로 성교촌(聖敎村)이 형성돼 있다는 점이 성소자 배출에 좋은 밑거름이 됐다.
신앙생활은 한사람이 따로 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영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없다.
수도원이나 수녀원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 이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살티」나「길천」과 같은 자그마한 성교촌은 어쩌면 초애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해가 끝난 뒤에도 신부를 만나 미사가 성사를 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성사를 보기위해 7ㆍ80리 길을 걷는 것은 보통이었다. 신앙으로 잘 뭉쳐진 교우들이 자식들을 신부 수녀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어쩌면 그들에게는 이 세상 최대의 소원이었을지 모른다. 살티 마을의 경우 한 집건너 신부수녀가 나왔다는 사실이 그런 추세를 여실히 증거하고 있다.
다른 곳도 비슷하지만 특히 언양 지방의 경우 신부에 대한 공경심이 대단한 점을 또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공경심은 신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로 온 것으로 신자들은 굳게 믿었기 때문이며 또 이를 굳이 신학적으로나 교리상으로 보다는「마음」으로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많다.
김영곤 언양봉당 주임 신부는『지금도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고백성사를 보기 전에 신부에게 큰 절을 한다』고 말해 이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신부에 대한 어른들의 공경심은 자식들의 성소에도 큰 영향을 끼쳐 언양지방 소년들 사이에『난도 신학교 간다』라는 말이 한때 유행어가 된 적이 있었다 한다. 줄잡아 1백여명 이상이 소신학교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수학 능력 부족으로 그만둔 경우도 많았다고 전한다.
또 이 지방 신자들은 전통적으로 성모신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너무 많이 바쳐 손가락에 못이 배긴 사람이 많다고 한다. 최재선 주교의 부친인 최봉조씨는 소 몰고 가서 묵주기도를 바치다 소를 놓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는 얘기가 구전으로 내려온다고 언양본당 회장 김용호씨(70세ㆍ김두완 석포본당 주임 신부 부친)는 전한다. 틈만나면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얘기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이같이 깊은 성모신심은 현재 부산교구의 사도직 단체 중 가장 활동적이고 교구 행사 때마다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레지오 마리애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가 많다.
결국 거룩한 삶에의 동경과 성직자에 대한 신자들의 공경심, 그리고 가정과 마을 본당에서 신자들의 투철한 신앙심 등 전체적인 이 지방 특유의 신앙적 분위기가 많은 성소자를 배출한 근본적인 윈인이라고 볼 수 있다.
농민들의 대도시 이주 경향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한국 교회 기둥들을 대거 배출해온 시골공소들도 젊은 층은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고 노인들만 남아있어「성소 온상」으로의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는 언양본당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김영곤 주임 신부는『본당 일을 같이 해나갈 젊은이가 부족해 많은 애로사항이 있다』고 아쉬워하는 한편『아직은 신학생과 지원자가 각각 2명씩 있어 성소의 맥을 계속 이어 나가고 있다』고 밝게 웃는다.
부산 경남 지역 신앙의 모태가 돼왔으며 부산교구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언양본당은 신안선조들의 신앙심과 유물을 고이 간직하기위해 1백년 이상 된 성상ㆍ성패ㆍ서적 수백 점을 성당에 보관하고 있으며 이것들을 전시할 자그마한 전시관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선교 2백년사를 편찬하고 있으나 인력과 재정난으로 일을 계획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언양지방 출신 사제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서정길 대주교(선종), 최재선 주교(외방 선교 수녀회 지도), 김승연(선종), 김문옥(“), 김영제(“), 박재수(선종), 박은식(“), 김동언(“), 김동철(남북), 안달원(서면), 박문선(초량), 이종상(선종), 이종창(마산교구), 이윤호(거창), 박주선(진주옥봉), 손덕만(울산), 정인식(동대신동),박유식(온천), 김윤근(신선), 장병진(미국 유학), 최득수(거제), 이종철(미국), 김두완(선푸), 김두윤(現부제), 최현철(美 교포사목), 남해근(美 교포사목), 박태식(美교포사목연포), 신요안(美교포사목 범일 보좌)
※고침=본보1561호 6면「성소의 온상」가시에서 공주출신 성직자 명단중「이계창ㆍ백승곡ㆍ유영소ㆍ백성수ㆍ김여곤 신부」는 공주출신이 아니라 규암 출신의 잘못이기에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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