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전교생활을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재를 지키시고 마귀의 유혹을 받으신 일은 교회생활에 많은 교훈을 주었다. 특히 교회의 복음전파생활은 예수님의 시험받으신 일을 토대로 전례점으로 생활화하였다. 우선 성직자들이 성품을 받기 전에 이 모범을 따라 피정을 한다. 수도자들은 수도서원을 발하기 전에 얼마동안의 수련기를 가진다.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돈독하게 하기위하여 이따금씩 피정기간을 가진다. 이밖에도 개인생활에서도 어려움을 당할 때 예수님의 시련 받으신 것을 교훈으로 삼는다. 그래서 교회의 전례생활 중 사순절동안 40일의 봉재 (封齋) 에 앞서 사순절 첫 주일에는 예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기사를 읽고 묵상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사도들이, 초생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제시하면서 정확한 메시아 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그분이 약속된 메시아인줄은 알았지만 메시아의 왕국과 세속의 왕국을 혼돈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선조들이 오랫동안 시달리는 민족적인 수난에서 메시아의 왕국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예수께서 실망스럽게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곧 부활하심에 힘을 얻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예수께서 여봐라는 듯이 부활하신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초생교회가 예수를 메시아로 세상에 제시할 때에 기왕이면 영광을 떨치는 하느님의 아들로 이때까지 그렇게도 괴롭혀오던 악의 세력을 당장 처치하시는 권능을 휘두르는 메시아로 제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깨우침의 성령을 받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고난 받는 야훼의 종으로 제시하였던 것이다. 기적을 몸소 체험한 사도 바오로가 스스로를 비우는 그리스도론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시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필립비서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그리스도께서는 굳이 하느님이심을 내세우지 않으시고 자신을 비우시고 종이 되셨습니다(2장6?7). 히브리서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그분에 대한 신앙을 굳게 (즉 흔들리지 않고 올바르게)지킵시다… 그분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4장15). 그분은 친히 유혹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유혹에 시달리는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2장18).
마태오, 루가, 마르코가 예수께서 광야에 나아가 마귀의 유혹과 싸우는 광경을 제시할 때 초생교회의 예수 그리스도론을 같은 맥락에서 가르치려는 것이었고 메시아의 왕국은 이세상의 권세가 아니고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아들로 선언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붐비는 요르단 강을 피하여 광야로 나아가셨다. 그것은 성령의 영동 (靈動) 을 받은 움직임이었다. 광야는 악령들이 사는 곳이었고 마귀의시험이 있는 곳이었다. 그것은 하느님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 할때 시련을 겪은 장소였기 때문이었다(출애 15장25이하). 그러나 이사야예언서에는 구원의 소리가 광야에서 들려온 다 (이사40장3). 여기서 구원의 새싹이 돋아날 때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범표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을 것이며 어린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는 평화로운 땅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40일 동안 그곳에서 지내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고 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다고 마르코가 글을 쓸 때에 마르코는 위에 말한 광야의 뜻을 머리에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독자들은 명동거리에 나가서 자기가 광야에 있음을 느껴본 적이 없으신지요.
그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만 그들은 모두 익명의 사람들, 낯모르는 무리 속에 혼자임을 느낄 때 진정 혼자 광야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 무리와 서로 알게 되고 서로 도움의 대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명동은 유혹의 광야가 아니고 구원의 빛이 비치는 새순이 돋는 장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장미 빛 꿈을 품고 광야에서 독거하며 오직 하느님과의 대화 속에 묻혀 있는 예수께서는 두 편의 적대자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좋은 일을 증진시키시는 증언자 성령과 이를 방해하려는 악마이다. 악마는 매력 있는 웃음으로 유혹하고 성령은 진리로써 이를 타이른다. 마르꼬복음서는 악마를 사탄이라 했고 마태오와 루가는 이를 마귀라고 하는 고유명사를 썼다. 사탄은 반대자 거역자란 뜻이고 마귀는 무함자이며 모함자이며 거짓말쟁이이며 해악으로 몰아넣는 고발자이다. 모든 것을 비우시고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신 예수께서는 참말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이다. 40일 동안 식음을 페하시고 재를 지키신 어려움보다 더 어려운 시련을 겪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배부름의 유혹, 자기 과시의 유혹, 세상권세의 유혹을 앞에 놓고 선택해야할 갈림길에서 있는 어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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