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탄생지
5. 사람들은 예수께서 30세가 될 때까지 가족들과 함께 거주한 곳의 이름을 따서 예수님을「나자렛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지가 나자렛이 아니라 예루살렘 남쪽 유다지역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복음기자 루가와 마태오가 이것을 말해줍니다. 루가는 특히 로마당국이 명한 인구조사 때문에 요셉이 베들레헴에 갔다는 것을 지적합니다.『요셉은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 동네를 떠나 유다지방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곳으로 갔다. 베들레헴은 다윗 왕이 난 고을이며…요셉은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는데 그때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아들을 낳았다』(루가2, 4~6).
유다의 땅 베들레헴!
성서에 나오는 다른 장소들과 마찬가지로 베들레헴 역시 예언적 가치를 지닙니다. 예언자 미가를 언급하면서 (5, 1~3)마태오는 이 보잘 것 없는 고을이 메시아의 탄생지로 지적됐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유다의 땅 베들레헴아, 너는 결코 유다의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영도자가 너에게서 나리라』(마태오2, 6). 예언자는 덧붙입니다.『그의 핏줄을 더듬으면 까마득한 옛날로 올라간다』(미가5, 1).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나시겠느냐고 동방박사들이 물었을 때 헤로데 왕이 대답하기 위해 사제들과 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그들이 언급한 것은 이 본문입니다. 『예수께서 헤로데 왕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나셨다』(마태오2, 1) 는 마태오복음 본문은 미가의 예언에로 거슬러 올라가며 제4복음의 질문에서도 참조 됩니다『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다윗이 살던 동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고 하지 않았느냐?』(요한7, 42).
「예수」는 역사적 인물의 이름
6. 이것에서 우리는 예수가 팔레스티나에서 살았던 한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다 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만일 모세와 요수아 같은 인물들의 역사적 신빙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면 훨씬 더 큰 이유에서 예수의 역사적 존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복음서들은 그 첫째 목적이 전기를 쓰는 것이 아니므로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자세하게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비판적으로 정직하게 읽으면 그 자체들이 나자렛의 예수가 일정한 장소와 시간 안에 살았던 역사적 인물이라는 결론에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또한 순수 과학적 입장에서도 과거 신화적 이론에 의해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어떤 학자들에 의해 그랬듯이 예수의 존재를 긍정하는 이들보다 그 존재를 부인하는 이들이 더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예수님의 정확한 탄생연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일치하지 못합니다. 수사 디오니시우스엑시구우스가 5백 33년 로마창건으로부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햇수를 계산하자고 제안했으며 그 계산이 틀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4년이 틀린다고 주장했으나 그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해방시키신다」
7. 이스라엘 백성의 전통에서는「예수」라는 이름이『하느님께서 해방시키신다』는 어원적 의미를 보존했습니다. 전통에 의하면 자녀들의 이름을 짓는 것은 항상 부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아들 예수의 경우 주의 탄생예고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루가1, 31), 그리고 꿈에 요셉에게 (마태오1, 21) 지시한바 대로 그 이름이 높은데서 선택되고 부여되었습니다.『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복음기자 루가는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준 것』이기 때문입니다(루가2, 21).
예수는 구세주
8. 하느님의 섭리의 배려에 따라 나자렛의 예수는『하느님께서 해방시키신다』는 구원을 암시하는 이름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분은 그분의 이름이 암시하는바, 즉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루가와 마태오의 소위 유년시기 이야기에 나오는 몇 구절로 확인됩니다. 『…너희의 구세주께서 나셨다』 (루가2, 11). 『예수는 자기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마태오1, 21). 이것은 신약 전체가 계시하고 선포한 진리를 반영시키는 표현들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를 들면 필립비서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다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필립비2, 9?11).
예수를 들어 높이는 이유는『이분에게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사도행전4, 12) 라고 용감하게 선포한 사도들의 그분께 대한 증언언에 나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