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현재 경기도 시흥군 청계리 속칭「하우고개」소재「하우현 본당」으로 발령받았다. 하우현 본당은 관악산 수리산 청계산 광교산에 둘러싸인 산골본당으로 예로부터 신앙의 유서가 깊은 곳이었다. 수림이 울창하고 인적이 드물어 일찍부터 교우촌이 형성됐고 신유년ㆍ병오년 박해 때부터 순교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교구에서는 한때 이곳을「조선교구 무렴시태 성모주교좌 성당」으로 지정하려고 할 정도였다.
하우현본당은 지은 지 50년이 넘는 벽돌성당으로도 유명했다. 하우현이 본당이 되고나서 1900년경 처음 부임한 불란서인 제 신부(샤플렝)가 그 성당을 지었는데 벽 두께가 한자를 넘는 아주 튼튼하게 지은 성당이었다. 제 신부는 얼마나 괴짜였는지 저녁에 돌아와서 일꾼들이 지시한 대로 해놓지 않았을 경우에는 일꾼들을 발길로 차면서 다시 공사를 계속했다고 한다. 성당은 교우 50~60명 정도가 들어갈 크기였다. 겨울이면 솔잎가지를 긁어다가 땠는데 주변 사람들이 산에 나무를 다 베어가서 땔감을 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때문에 돈을 넉넉히 준다고 해도 나무꾼들이 배겨나질 못했다.
1954년 안양본당이 생기자 안양에 임시로 미사지내는 집을 조그맣게 짓고 그리고 가게 됐다. 6ㆍ25사변 직후가 형편은 꽤 어려웠다. 때문에 성당을 짓기 위해서 본당에 몇 포대씩 나오는 구제물자를 활용하기로 했다. 회장들과 의논을 거쳐 이 구호물자를 교우들에게 시장가격보다 싸게 공급하기로 하고 거기서 나오는 차액을 성당기금으로 쓰자고 의견을 모았다. 당시로서는 어떻게든 성당을 지어보려는 자구책이었는데 그만 경찰에게 걸리고 말았다. 구제물자를 불법으로 판매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교우들을 양심대로 지도했고 구제물자를 파는 것은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법이 원한다면 법을 받겠으나 앞으로 구제물자가 나오면 또 팔겠다』고 생각을 밝혔다. 내 말이 설득력이 있었는지 따지러온 경찰은 그만 돌아가 버렸다. 구제물자를 팔아가면서 까지 짓기 시작한 성당은 부임 8년만인 1962년에 완공을 보았다.
안양본당에 있는 동안 유치원을 지어 운영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 일이다. 신천시절부터 유치원은 나와 인연이 있었는지 안양본당에 부임해서도 주변사람들이 안양에 유치원이 필요하다며 자주 설립을 권유해왔다. 때맞춰 수녀회원이었던 한자매가 보모를 자청해왔다. 그래도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설립을 미루고 있던 차 어느 날 하우고개근처로 전교를 다녀오는데 성당마당에서 그 자매가 60~70명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활기 있는 모습을 보고 유치원설립을 결심했다. 임시 성당 옆에 위장을 치고 유치원을 운영하다가 나중에는 도에서 정식 허가를 얻어 유치원건물 짓기를 시작했다.
안양지역에서는 안양본당이 유일했기 때문에 전교가 절실한 실정이었다. 전쟁 후 레지오마리애가 한국에 진출하자 나는 즉시 본당에서 레지오단원을 모집해 전교에 나섰다. 주일이면 단원을 5~6명을 각 지역으로 내보냈다. 때로는 1부락에 1가구만사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라도 혼자서 성사를 주러갔다. 이런 것을「독공소」라고 불렀는데 이런 식으로 한 부락씩 다니다 보니 어느새 공소가 세워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안양전역에도 천주교 전교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안양시는 4개의 본당이 있을 정도로 성장했는데 그 시절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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