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졌던 사건
부활은 서방신학에서 보상설과 후교론적 설명 때문에 잊혀지다시피 하였다. 보상설(補償說)이란 죄로 말미암아 문란해진 우주질서와 훼손된 하느님의 명예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구속죽음에 의해서 회복되었음을 설명하는 학설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그리스도 생애의 모든 사건이 오로지 십자가 사건의 구원행위를 위한 전제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결정적이고 유일한 구원사건은 성금요일의 사건이었고 부활은 이사건의「자연적인」결과에 불과하였다. 호교론적 입장은 예수의 신성을 증명하고 또 그리하여 예수의 메시지가 타당하였음을 입증하기 위한 사건으로서 부활을 해설하였다. 부활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 자기의 신성을 증명한 사건이라고 이해하였다.
성서의 부활증언
성서에서는 부활이 그리스도사건의 중심 되는 정점으로 증언되어있다. 1고린 15, 3이하는 부활에 대한 최초 복음 선포의 근본 요소들을 담고있다:십자가에 못 박힌 분이 부활하였고, 죽음과 부활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발생한 것이며 죽었던 분이 살아계신다고 제자들이 증거 하였다.
부활은 복음 선포와 신앙의 바탕이다(15, 4). 『성서에 기록된 대로』라는 말은 부활이 곧 하느님의 계획아래 발생한 십자가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중음은 하느님이 예수를 방치해 둔 표정이 아니라 구원의지를 드러내 보이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사도설교는 부활을 묘사하지 않고 성서를 바탕으로 하여 빠스카 사건이 어떻게 해서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 중심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선포한다.
예수를 부활시킨 하느님은 성조들 즉 생명과 정의의 하느님이다. 예언자들이 예고한 종말시대가 부활로써 시작되었다. 하느님은 예수를 주이며 그리스도가 되게 하심으로써 그리스도 신앙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와 성령의 선물을 베푸신다(사도 3, 29:4, 12:10, 34이하). 예수의 죽음은 사람들이 그분을 악인으로 처형하였지만 하느님이 그분을 죽음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영광의 삶에로 다시 살리셨기 때문에 메시아의 죽음으로 판명되었다. 사도설교는 부활발현에 대해서는 미약한 관심을 쏟을 뿐 제자들의 증언을 뒷받침 하고 전 구원역사의 결정적 전환점이 된 사건 자체에 관심을 둔다.
공관복음서는 빈 무덤 및 부활발현 이야기로 나누어 부활을 묘사하는데 세 복음서 사이에 다양한 상이점이 발견되지만 핵심내용에 있어서는 서로 일치한다. 마태오는 빈 무덤에 관한 논의에 특별한 관심을 두며 경비병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유다인들을 위한 복음서의 호교론적 특징을 드러낸다.
산상 (山上) 발현과 갈릴래아로 가라는 명령을 담고 있다. 루가는 부활하신 분의 육체적 실재를 부각하는데 이는 육체적 차원을 무시하는 회랍사고를 염두에 둔 것이다. 한 장소와 한 날 (日) 에 모든 빠스카 사건을 집약하며 예루살렘 중심으로 발생한 사건들로 묘사한다. 그곳은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행위, 메시아가 죽고 부활하는 사건이 성취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분은 그곳에서 제자들을 만나고 온 민족에게로 파견한다. 마르코는 부활 메시지와 갈릴래아 지방 발현에 중점을 둔다. 나자렛 예수의 부활 소식은 인간이 지어낸 것이 아니고 천사들을 통하여 하느님이 주신 소식으로서 여인들에게, 나아가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갈릴래아 지방에 국한된 발현이야기는 그 지방에서 전도활동을 하였던 나자렛 예수와 부활한 분은 동일 인물이며 부활로써 그분의 행적과 말씀이 되살아났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세 복음서들이 서로 공통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활은 나자렛 예수와 관련된 사건이며 그가 누구인지를 결정적으로 계시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고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의 신앙에 대해 언급한다. 예수는 새 존재의 영역에 들어갔으며 보편적 권능을 충만히 소유하고 제자들 가까이 현존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가지고 새로이 그들 가운데 있으며『세상 끝 날까지』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28참조). 부활하신 분은 제자들이 복음의 증언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도록 하기위하여 그들에게 성령을 보낸다.
빈 무덤은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으며 확인되었던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자체로 애매모호한 현상이다. 제자들에게 당황, 두려움, 불안을 야기 시키는 사실이고 반대자들에게도「시체도난」의 구실을 제공할 뿐이다. 빈 무덤으로부터 부활하신 분에 대한 신앙이 생겨난 것이 아니며 그것은 그분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에 의존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부활의 증명이 아니라 해석을 필요로 하는 하나의 표징이다. 초대교회는 하느님이 무덤에 묻힌 예수를 다시 살리시어 그분의 몸을 영광스럽게 하셨으므로 그 무덤이 열리고 비워졌다고 해석하였다.
부활발현은 구약성서의 신현(神顯)에 따라 묘사되었다. 발현의 주체는 하느님 자신이므로 인간의 바람이나 뜻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자신을 계시하시지만 어디까지나 숨어계시는 분 (이사45, 15) 이시다. 부활하신 분이 자신을 나타내어 목격자가 그분을 알아보는 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하느님이 근본적으로 감추어 계시고 신비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발현의 특성은 발현하는 분에게 전적으로 주도권이 있으며 보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이다. 발현은 시간을 초월해 있는 분이 시간 안으로 잠시 들어옴을 뜻한다. 부활사건 자체는 전혀 묘사될 수도 묘사되어 있지도 않다. 부활사건에서의 주체는 하느님이고 그 객체는 십자가에 매달렸던 분이다(하느님이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 타동사). 부활발현에서의 주체와 객체는 부활사건에서 객체가 되었던 분이다(그분이 자신을 보여주셨다.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다). 부활사건 및 발현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관찰과 묘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요한은 영광과 현양으로써 부활을 묘사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그분이 계시한 영광은 곧 그분이 현양되심으로써 누리는 영광이다. 또한 그분이 세상 창조이전부터 누렸던 영광이기도 하다 (요한17, 5ㆍ24). 토마의 불신앙과 고백은 요한사가의 특수자료이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20, 28) 고백은 말씀에 관한 머리말 (1, 1~2) 의 단언과 직결되어있다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 같은 분이셨다』부활하신 분은「하느님의 오른편」에 올라 영광스럽게 되셨으므로 감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신앙을 통해서만 체험되고 만난 수 있게 되었다. 부활이해의 관건은 부활의 증언에 의존해 있는 부활신앙이다. 그렇다면 그 신앙의 내용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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