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는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린 복음전파의 내용을 적은 책이다. 그런데 그들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역점을 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수난의 수모와 부활의 영광을 대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복음서의 각 대목은 다른 대목과 늘 대조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세상을 멀리하시며 지낸 40일간은 부활하신 후 세상과의 접촉을 멀리 하시고 오직 제자들과만 이따금씩 만나셔서 하느님나라 건설에 관한 지시를 하신 것과 대조될 수 있다. 예수께서 유대아들 손에 잡히어 고발을 당하고 재판을 받으신 일은 천하에 둘도 없는 해괴한 재판이었다.
그 재판은 피고를 고발한 고발자들이 원고도 되고 변호인도 되었다. 그리고 피고는 재판받기 전에 이미 선고가 정해져 있었다.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판이 천부당만부당함을 알리는데 목청을 돋구었다. 이 부당한 고발은 예수 그리스도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타나기 바로 전에 세례자 요한에게서부터 시작된다. 예수그리스도의 전교생활은 갈릴레아에서부터 시작하셨다. 갈릴레아는 이스라엘 민족이 남북왕조로 갈라질 때 북왕주에 속했던 곳이며 그 후 이 지방은 이방인들에게 점령되어 혈통, 문화 등이 혼합되었고 순수 유대아인을 자처하는 남왕조 유다국민들은 그들을 이방인의 갈렐리아라고까지 부르던 터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교활동은 바로 이방인의 갈릴레아를 주 무대로 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40일 동안의 광야 은거생활 후 예수께서는 곧바로 갈릴레아 전교활동으로 들어가시지 않으시고 얼마동안 유다 지방에 머물러 계셨다고 요한복음서는 전한다.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셨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요한복음서는 예수의 일생의 전주곡처럼 유대아들과의 대립의 마당으로 예수의 유다 땅 체제를 소개하고 있다. 이 전주곡에 맞추어 개막되는 서장은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의 왕림을 소개하는 인사말로써 막을 올린다. 그것은 물론 관중인 유대아인들의 의아심을 불러 일으켰고 세례자 요한에 대한 심문이 뒤따른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세례를 베풀며 회개를 외치고 죄사함을 부르짖으며 당시 민족의 지도계급적인 당파였던 파리사이파 사람들을 독사의 족속이라고 험난하는 그 요한이란자는 누구인가. 그 정체를 파악 해야만 했다. 수도 예루살렘에서는 그에게 대표단을 파견하였다.
제관들에게 레위인들은 딸려서 보냈던 것이다. 제관들은 예언자를 알아보는 공식적인 직무를 가진 계급이었다. 레위인들은 제관들의 보좌들이다. 들리는 말에는 요한은 대제관의 아들이며 공식은 아니지만 예언자적 발언을 한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요한을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 대제관의 아들이며 아아론의 혈통을 받은 사람은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이런 혈통의 예언자라면 혹시나 메시아가 아닐까 적이 의심스럽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당신이 메시아요」하고 물어보았다. 사실은 복음서에는 「당신은 누구요」하고 물어보았다.
그 대답으로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라고 단호하게 부인하였다. 「누구요」「나요」 또는 「나는 아니요」라는 대화용어는 사도들이 복음전파 할 때에 쓰던 성서용어이다. 요한이 만일 자기가 메시아라고 생각했더라면「나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나는 메시아요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대답은 후에 예수께서 하실 대답이다. 그러니 여기 제관들과 요한과의 대화에서「누구요」라고 물은 것은「당신이 메시아요」라는 뜻으로 물은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단호히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밀사들의 생각은 교활하게 돌아갔다. 이 사람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니 메시아와 가장 가까운 인물을 들추어 물어보자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은 엘리야이다. 말라키야의 예언서(3장 23-24)와 집회서 (48장 10-11)에 엘리야가 다시 와서 주님의 날을 준비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는 것을 그들은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그러면 엘리야요」하고 재차 물었다. 요한의 대답은 역시「노」이다. 그만했으면 요한이라는 사람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란 판단이 내렸을 것인데 그들은 철저했다. 미심쩍은 인물이 성서에는 또 한사람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신명기(18장15)에 제2의 모세처럼 보내지기로 되어있는 한 예언자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래서「그 예언자요」라고 삼차로 물어보았다. 요한의 대답은「아니요」이다. 초조해진 그들은 요한의 정체를 알고 돌아가야만 해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요한은 자기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일러주었다. 심문자들은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바로 그「회개하라, 주의 길을 닦아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는 파리사이파 사람들의 밑사도 끼어 있었다. 그들은 최고 재판소인 산헤드린의회와 유착되었었고 이방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유대아 민중의 상당한 지지도 받고 있던 종파였다. 장차 예수를 잡아 십자가에 못 박을 주역들이 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요한이 행하고 있는 세례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세례는 그 이전에는 에쎄느파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는 뜻으로 목욕의 형식으로 행하였고 국수주의 파리사이파들은 이교도출신을 유대아 민족공동체에 받아들일 때 행하였다. 그런데 요한은 죄의 사함을 받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라고 하고 자기들 파리사이파들은 독사의 족속으로 몰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요한은 무슨 권한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냐 말이다.
그들은 사뭇 도전적이었다. 요한은 해명 겸 앞으로의 구원의 세례를 가르친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줄 따름이요」다시 말하면 내 세례는 정식예절도 아니고 권한을 행사하는 식이 아니다 라는 대답이다. 그러나 참말로 유효한 세례는 성령을 받는 세례라는 것이고 그 세례는 자기보다는 훨씬 훌륭한 분이주실 것이다 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이미 그들 가운데 와 계시는데도 알아보지도 못하고 요한의 말뜻도 모르고 그들은 돌아가고 말았다. 이일은 요르단강 건너편 베타니앙에서 있었다고 요한복음서는 적고 있으나 이베타니아는 베타바라라는 곳이며 베타바라는「지나며 들리는 집」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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