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또한 하나의 순명이다』라고 한다면 너무 비약적인 말이 될까? 겨울의 문턱에서 바라보이는 삼라만상이 늘 그렇게 스러져 가듯 우리 생명도 언제인가는 이리 될 수밖에 없다고 하겠지만『그저 모든 것이 다 그러니까』하는 식의 태도보다는 죽음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는 보다 응답적이요 긍정적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삶의 목적이 주님의 부르심에 기쁨으로 화답하기 위한 것이라면, 부르심에 자신을 탈바꿈시켜 답하는 것이 죽음이겠기에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죽음이 두렵고 당황스러움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왔던 모든 것을 그 시점에서 준비된 마음으로 정리해 보고, 생애를 돌이켜 보며 부족과 실함을 셈해 보고 이를 주님께 돌려드린다는 면에서 죽음을 순명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이는 세상을 떠난 그들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우리들이어야만 한다면 비록 떠나고 헤어짐이 고통이요 슬픔이겠으나 마치 지각없는 아이들처럼 세속에 묻혀 천년도 만년도 마냥 살 것인양 미련스리 욕심 부릴 일도 아니요, 속 좁게 투정할 일만도 아니라고 보겠다.
순명이란 마음 기울여 듣는 자세를 뜻한다. 사도바오로는 그의 로마서 (15장8절 이하) 에서 순종과 불순종에 대하여 들음과 듣지 않음을 뜻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불순종이란 듣지 않는 자세로 자신의 아집이나 교만으로 경청의 범위밖에 있어,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지 못하는 것이요, 순종이란 그분의 부르심을 항상 들을 수 있어 언제나 그분의 뜻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순종하는 사람은 듣고 깨달으며 (마태오15장10절) 그분의 말씀을 명심해 듣는다. (루까8장18절)
신앙인 이란 세상에 속해 살지만 세상의 말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주의해 듣는 이로, 말씀해주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희브12장25절)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느님께 마음 두고 살며 이런저런 것들을 소유하고 있지만 하느님 안에 있기 위해 언제고 이를 내어놓을 수 있는 자유로움 속에 사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세상의 어느 한곳에 마음 매어 두어 그로인해 삶이 후회스럽지 않으며 떠남에 선과 덕으로 가벼울 수 있고 향기로울 수 있어「임종의 아름다움」이란 표현이 무리가아니라면 이렇게 살다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매일 주어지는 이 하루가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벅차게 느껴진다. 나 혼자만의 생활이 아니고 함께하는 것 이여서 어떻게 서로하고 나눔에 있어 물 흐르듯 순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마음 써 볼 양이면 어느한쪽에 치우쳐 괴로울 수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애정이란 명목으로 스스로 욕심 채우며 들기에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려 듣지 않고 공정하지 못한 자신의 울타리를 만들고는 여기에 만족하려 하곤 한다. 현명함이란 마음 가두지 않고 언제고 열어놓아 자신만의 속말만 듣지 않고 다른 이의 말도 마음 써 듣기에 고여 썩음 없는 신선함에서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음으로 우리각자의 삶을 정돈하여 나갈 때 어느 때인가 다가온 죽음 앞에 그리 두려움으로 떨지만은 않을 것이다. 실상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살기위해 산다기보다 죽기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가 살기만을 위해 살려고 하는데 비뚤어지고 흩으러 짐이 있다고 생각된다. 살아야 된다고 하는 것은 분명 죽어야 한다는 것보다 용약할 일이지만 흔히 나만이 그래야 된다는데 멀리 못 보는 아둔함이 있지 않나 한다. 루가복음의『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처럼 다른 이를 생각지 않는 이는 기실 자신도 누군지 모르게 되기가 십상팔구여서 지남을 돌이켜 보지 않고 내일을 바라보고 준비하지 않는 우둔함이 있다고 보겠다. 어느 때인가 올 죽음이 있음을 잊지 않고 어떻게 죽기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곰곰히 따져본다면 너 있어 나있음을 발견하고 우린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서로 사랑함으로 풍요롭게 될 것이다. 여기에 주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의미 깊음을 알만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성부께 순종해 죽으시므로『문물위에 계시며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시는 분』(에페소4장6절) 이 되셨다. 이로써 그분은 죽음이 마지막 이별이요 끝이 아님을 알게 해 주셨다.
믿는 이에게 참 삶이란 무엇이겠는가? 이는 거룩함으로 나아감이라 본다. 거룩할 聖에서 보듯 듣고 말함에 있어 으뜸에 있다는 것이다. 마음 다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말하고 실천함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다. 바로 순종의 길이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필립2장8) 고 한다. 그분의 가르침은 순종이였다. 순종해 들음은 사람을 편협하지 않게 하고 관대하게 한다. 행함에 맑고 시원하다. 깊으나 거칠지 않은 고요함이 있다고 하겠다. 함께해 주시는 하느님께서 건네주시는 위로로 외롭지 않고 가득하기에 어떤 한곳에 합심으로 고착되어 있지 않는다.
믿는다는 것이 듣는다는 것이요 순종한다는 것이라면 죽을 때 죽을 수 있는 죽음을 회한과 불안으로 맞지 않고 편안함으로 이룰 수 있는 은총을 위해 오늘은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지켜보는 이웃에게도 마지막 떠남에 있어 의연함으로 삶의 용기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Ⅰ데살5장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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