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4일 서울 상계동 양평동 철거민 2백여명이 정부의 전격적인 철거강행에 항의、명동성당에서 무기한 항의농성에 들어가자 교회내에서는 이를 둘러싸고 여러시각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한편은 삶의 터전을 빼앗겨버린 철거민들에게 교회가 따뜻한 손길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이들 철거민들이 아파트 입주권이나 더 큰 이권을 얻기위해 모인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상반된 이야기들은 농성 약 한달뒤인 5월 6일 철거민들이 성당입구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자 다시 고개를 들었으며, 일부 신자들은 「명동성당 측에서 이들을 과감히 소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각 4개월이 지난 7월말 현재 명동성당 구내에서 천막을 치고 생활하던 철거민들 중 움직이지 않고 계속 자리를 고수해온 30여세대는 천막을 쓸어버릴 것 같은 폭우속에서도 곧 실현될 것만 같은 「집단이주」의 꿈속에서 하루 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다.
『밖의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고 욕을 많이 하죠? 사실 저희들도 미칠 지경입니다. 자식들도 딸려 있고、도저히 인간같지도 않은 이 생활이 지긋지긋하기도 하고… 하루 빨리 무슨 대책이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상계동, 양평동에 있을 때는 비록 남의 집 4평짜리 삭월세에 살았지만 그래도 그때는 저녁때 식구들이 모여앉아 도란도란 얘기 꽃을 피울 수 있었다던 그들.
그들도 4개월에 걸친 「눈총」이 결코 무심치 않았던지, 아니면 끝없이 이어지는 정부와 교회의 줄다리기에 지쳐버렸는지 4월의 그 기세는 온데 간데가 없다.
그동안 이들을 바라보는 신자들의 시각도 많이 변했다. 순수한 동정도 이해의 차원으로, 더나아가 참여의 차원으로까지 발전했으며 「흑심을 감춘 농성」으로 받아들였던 신자들도 조금씩 이해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물론 아직도 많은 신자들이 철거민들의 요구가 「아파트 입주권」혹은 「상당액의 보상비」로 이해하고 있지만 철거의 아픔이, 내집이 없는 서러움이 어떤 것인가를 피부로 느끼게 됐다.
철거와 교회, 상당히 거리감 있게 들리던 이 단어도 불과 1년사이에 신자들에게 익숙해졌다.
85년 6월 상계동에서 가옥주와 세입자들의 충돌이 표면화되면서 맺어지기 시작한 「철거와 교회」가 금년 4월 서울대교구 도시빈민사목협의회를 낳기까지 어떻게 이해돼 왔으며 또 지금은 어떤지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교회가 과연 이들에게 「나눔의 터」를 마련해 주었는가, 동정 이상의 호의에 그치지 않았는가, 의타심만 불러일으킨 것은 아닌가, 신자들에게 철거민들의 고통, 가난의 삶, 처절한 현실을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가라는 반문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교구 도시빈민사목협의회 회장 김병도 신부는「교회가 철거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인간생존이라는 대명제 없이도 그들이 하느님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라며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근본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가난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그들에게 가난의 권리를 일깨워 주는것」 이라고 말했다.
김신부는 구체적으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본당차원에서 ◀빈민들에게 모임장소 제공 ◀단체들의 지역조사 및 빈민들과의 연계 독려 등이 있으며 교구차원에서는 다각적 홍보 및 전문기구 설치가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신자 개개인은 ◀주거지의 크기에 대한 분별 ◀무주택자에 대한 부동산제공 ◀부동산 투기 중지 ◀철거지역아파트 입주 거부 ◀빈민들에 대한 형제애 고취 등 작은 일부터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1960년대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형성된 도시빈민들. 정은 고향을 등지고 하나 둘 대도시로 향하여 발길을 옮겼던 이들은 도시미화, 88올림픽의 미명아래 철거를 거듭, 대도시의 언저리로 밀려나고 있으며 가옥주는 가옥주대로, 세입자는 세입자대로 타의에 의한 철거민이 돼가고 있다.
지난해 상계동 철거가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을때 서울의 또다른 30여곳의 철거지역은 언론의 주목도, 교회의 위로도 받지 못한채 처절한 삶의 투뱅을 벌였다.
이 와중에 본당들은 방관자가 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형제ㆍ자매」가 아니기 때문에 애써 외면했는지 생각해 봐야 할것이다.
올림픽 이전에 철거가 예정된 곳만 50개 지역이 넘는다. 이제 본당들은 머리 누일 자리도 없이 살았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분을 닮은 가난한 이웃들을 받아들여 삶의 자리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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