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로 물러가 40일 동안 재계를 지키신 다음 갈릴레아에서 전교를 시작한 것으로 공관3복음서 (마태오ㆍ마르코 루가) 는 전하고 있다. 그런데 광야에서의 재계직후와 갈릴래아 전교 사이에는 얼마동안의 간격이 있는데 이 간격을 요한복음서가 메꾸고 있다. 그렇다고 요한복음서가 다른 복음서에 빠진 사건들을 날짜순으로 메꾸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요한복음서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소개하는 것이 의도는 아니다.
이 글에서 앞서도 말했듯이 (1988년 5월 1일자) 요한복음서는 영원 속에서 움직이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그 말씀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생명의 말씀으로 나타나시는가를 서론으로 적고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간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세례자요한의 입을 빌어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서는 모든 사실들을 사건기술로 취급하지 않고 상징으로 취급하면서 신학적인 뜻을 부여한다. 요한복음서는 생명의 복음서라고 하지만 신창세기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
구약의 창세기가 세상에 자연생명이 움트고 성장하는 과정을 적었다면 요한복음서는 초자연적인 영원한 생명이 태어나 성장하는 모습을 전해준다. 창세기 초장에서 7일간의 창조이야기에 맞추어 요한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심을 드러내는 과정을 7일이라는 상징을 해서 나타내고 있다. 첫날에는 반대자들에게 메시아가 이미 와 있다는 사실을 요한이 확언하고 (요한 1장19이하) 둘째 날에는 그 분은 하느님의 아들이며 바로 저기 오는 분으로 하느님의 어린 희생양을 가리켰고 (1장 29이하) 셋째 날에는 이 사실을 요한이 자기 제자에게 알렸고 넷째 날에는 예수와 베드로의 첫 대면 (1장42) 다섯째 날에는 필립보의 부르심과 나타나엘의 신앙고백 (1장43이하) 여섯째 날은 아무 일도 없는 날로서 아마도 예수께서 베타니아에서 가나로 여행하신 날인 것이며 일곱째 날에는 가나혼인 잔치에서의 첫 기적으로 영광을 드러내신 날이다.
새 창세기 제2일에 해당되는 오늘의 대목은 이러하다 요한은 요르단 강에서 예수께 세례를 준 후 오랫동안 그분을 보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자기 제자들에게 증언한다. 저분이 바로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세상의 죄를 한 몸에 짊어질 희생양이 다 라고 증언하였다. 이 사실은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그분위에 가시적으로 내려 머무시는 것을 보고 증언한다고 하였다.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지칭할 때 이사야예언서의 야훼의 종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 종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어서 뽑아 세운 종이며 하느님의 영을 받고 a뭇민족에게 바른 인생길을 펴줄 종이며…정의를 세우도록 불리운 자이며…만국의 빛이 될 자이다 (이사42장). 그러나 그는 고난을 받을 야훼의 종이다. 입 한번 열지도 않고 참으며 온갖 굴욕을 받을 종이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을 당할 야훼의 종이다 (이사53장).
이러한 어린 양은 하느님의 백성이 이집트에서 질곡의 포로생활에서 탈출할 때 그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희생물로 잡았던 과월절의 양이기도 했다 이 고난 받는 야훼의 종을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는 것은 초대 사도교회에서 인식하고 가르치던 대목이었다 (사도8장32). 사도 바오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월절 양으로서 희생되셨다 (고린전5장7).
하느님의 어린 양은 성서에서 또는 유대아의 전통적인 종교사상에서 두 가지 상반된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즉 고통을 받다가 죽임을 당하는 억울한 모습과 세상에 새 활력을 일으킬 하느님의 종의 모습이다. 요한이 자기 측근들에게 소개하는 어린 양이 바로 이 두 모습의 양이다. 하느님이 인간의 종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은 신앙이 없는 자들에게는 하나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종은 뭇사람들의 죄를 한 몸에 짊어지고 세상의 악의 세력을 꺾고 승리자로 오신 것이다 (묵시 7장17, 17장14).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증언된 예수는 요한이 이미 증언한 바대로『뒤에 오시지만 사실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던 분이며』(요한1장15)『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시다』(요한1장2). 그 분은 야훼의 종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성령을 부여받았고 (이사42장1) 이제부터 펼쳐질 구원의 시대에 그 성령을 풍부하게 세상에 쏟아 부을 것이다 (요엘 2장28이하).
이것은 성령으로 베풀 새로운 세례로써 세상을 새롭게 하실 예수의 사명을 요한은 거룩한 환시를 통하여 보고 있고 이것을 자기 측근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희생하며 예수를 세상에 제시하였다. 이 말은 앞으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희망과 기쁨이 될 것이며 예수를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신경을 몹시 건드리는 빌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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