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서는 원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창조하시고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게 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은총을 받았다. 그러나「영생」이란 은총은 아무런 댓가 없이 지불되면 무가치한 것이기에 하느님은 그들에게 하나의 계명을 주어 시험을 했다.
하느님 모상따라 창조된 인간
죄도 고통도 죽음 없는 낙원에서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만 죄를 범했다.
이것이 원죄이다. 이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고통과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부조리한 모순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낙원에서 받은 영생의 은총도 놓쳐버렸다. 그래서 이 괴로운 세상에서 울부짖는 비참한 꼴이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전능하시고 인자하신 하느님께서 왜 인간에게 죄의 기회를 주었으며 범죄할 것도 다 아시면서 어찌하여 그런 시험은 하셨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올바로 알아듣기 위해서는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인간은 고유한 지능과 자유의지를 가진 한 독립된 인격체이다.
자신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지도록 존엄하게 창조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를 잘못 사용했을 땐 책임을 져야 하고 자유를 잘 쓰면서 선행을 했을 땐 상을 받을만한 귀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아예 하느님이 죄를 모르는 인간으로 창조하셨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죄를 짓지 못하는 사람은 선행도 할 수 없다. 이건 인간이 아니라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죄를 범해서 스스로 불행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만 동시에 선행을 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이 두 가지 가능성의「열쇠」를 「내」가 쥐고 있다는 여기에 인간의 존엄성이 있지 않겠는가!
구원은 개인 노력이 좌우
하느님은 인간이 잘못될 줄 알았으며 동시에 잘못된 인간에게 다시 용서의 기회를 주는 구세주의 강생도 동시에 아시고 있었다면 하느님 측에서는 최선의 방법을 다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주셨고 인간 자신이 노력해서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안배하셨다.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기 위한 처사이다. 부모들이 애들을 데리고 옷을 사입힌다고 생각해 보자! 애들은 그들이 사고 싶은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사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산 옷에 대해선 좋든 나쁘든 자기들이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의 자유를 존중하고 싶어 한다.
우리의 원조들이 범한 죄에 대해서 우리는「자유의 남용」이란 새로운 죄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하느님의 계명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도 깨닫는 기회가 된 것이다.
원죄를 다른 말로「인류의 죄」라고 한다. 이것은 비록 최초의 우리 조상들이 범한 죄이지만 모두 인류가 다해야하는 공동체의 죄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 우리는 직접적인 원죄의 주인공들이 아니지만 원죄의 탈을 쓰고 모순과 부조리 죽음과 고통의 비운을 짊어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조들이 인류의 대표자였고 모든 인류 공동체의 책임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여하에 전 인류의 운명이 달려있었던 것이다.
원죄는 인류공동체의 죄
우리나라에도 조상이 역적이면 그들의 후손도 욕을 보게 마련이다. 한 두 사람의 실수로 서울시가 불이 붙었다면 죄 없는 서울시민이 그 고통과 시련을 겪어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불행의 원조에서 어떻게 해방이 될 수 있느냐? 어떤 구원의 길이 있느냐? 정말 누가 이 모순과 불행에서 우리에게 새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느냐? 그것은 누구의 가르침이냐? 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새로운 삶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구원의 가르침은 어떤 과학자나 철학자가 담당할 수 없다. 자연 과학적인 지식으로도 될 수 없고 어떤 상대적인 인간의 능력으로도 될 수 없다.
「새 인간의 길」가르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새 인간의 길 」「구원의 길」이란 귀한 은혜의 가르침이 성서이며 구원의 대역사를 담당하는 인류의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물을 이제는 소개할 때가 된 것이다.
원죄를 범한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절망이나 좌절이 있을 수 없다. 깜깜한 밤중이 지나면 밝은 새벽이 오는 법이다.
이제 인류의 새 역사가 펼쳐지는 하느님의 가르침과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이 지상에 나타난다.
우리에게는 새로히 치유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영원한 생명의 날도 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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