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사건의 완성
십자가 그 자체는 예수에게 실패이고 하느님에게 침묵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철저한 감추임이다. 인간의 눈에는 실패와 침묵으로만 보일 뿐이다. 하느님 자신과 인간을 위하여 어둠 속에서 발생한 사실들을 밝히려 드러내 보인 것이 부활이다. 부활은 숨겨져 있던 십자가의 의미를 밝혀줄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은 긴밀히 연결되었지만 서로 구분된다. 부활은 십자가 안에 감추어진 사실들을 밝혀주었지만 그 사건의 한 하느님의 자유로운 사랑이 이룩한 양면적 사건이다. 십자가가 죄에 대한 하느님의 분노와 심판이라면 부활을 하느님의 은혜와 승리이다. 십자가가 인간이 저지른 죄의 결과에 하느님이 동참하신 것이라면 부활은 죄 자체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이다. 그래서 부활은 십자가의 완성이다.
죽음 그 자체가 죄와 결부되어 있다(로마5, 12)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스런 육적 조건에 그분이 적극 동참해 있음을 보여주며 세상의 불의가 저지른 죽음이고 따라서 인간들이 하느님을 거슬려 반기를 든 최고의 적대행위의 표징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죽음에 그대로 방치되었다면 그분의 십자가는 가장 명백한 패배의 징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부활이 일어났다.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죄악이 패배자였음을 명백히 입증하는 것이다. 예수에 있어서 죽음은 모든 것의 끝장이 아니라 새롭고도 결정적인 생명의 시작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십자가의 참 의미까지도 이해될 수 있다. 죽음은 겪은 그 사실 자체로서가 아니라 사랑에 의해 받아들여진 죽음인 한 생명의 원리가 된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죽는 것은 인간을 구원하려는 성부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함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죄악의 역사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죄의 궁극적 결과에 깊이 연루하고 있음을 십자가는 지고의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 우리의 새로운 생명의 원리가 생겨날 수가 있다. 우리의 구원은 죽음이 아니라 분명히 생명 안에 있다. 십자가상 죽음의 행위 안에 내포되어 있는 구원의 가치 즉 생명의 가치를 결정적으로 선포하는 것이 부활이다. 십자가는 죽음의 계획이 아니라 생명의 계획이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권능은 패배인 것처럼 보여 지는 바로 그 곳에서 정확히 승리를 엮어낸다. 『하느님의 최종 행위인 부활은 하느님 사랑의 지고한 행위이다.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침으로써 예수는 극도의 시련 속에서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이고 그 효력을 보여주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요한15, 13:10, 11), 나아가 원수들을 위해서까지 자기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권능은 그 사랑을 부활로써 언제나 생명력을 가지고 현존하는 사랑이 되게 함으로써 인간을 위하여 생명을 주는 사랑으로 변화시켰다. 이리하여 사랑이 주권이 되었다』(Bㆍ리고).
1. 부활은 죄에 대한 최종 승리이다: 죽음은 인간의 죄가 저지른 죽음으로서 예수가 그 죄에 철저히 연루되었고 그 죄에 패배당한 듯이 보이는 표징이다. 반면에 그 죽음은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원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을 벗으로 여기면서 그 벗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사랑의 지고한 행위이다. 이 지고한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죄의 연대성 안에 자신을 내맡겼다.
따라서 부활은 죄악의 연대성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죄악을 결정적으로 쳐 이겨 승리하였고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탄생시켰음을 입증한 사건이다. 죽음 안에 극도로 표현된 사랑이 미움과 죄를 쳐부수고 생명을 가져다 준 것이다.
2. 부활은 인간을 위한 생명, 해방이다: 『하느님은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갈라5, 13): 『예수는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신 분입니다』(로마4, 25). 삶을 통해 율법ㆍ증오ㆍ죄에 있어서 자유로움을 보여준 예수는 죽음에 있어서도 자유로웠음을 입증하였다. 실제로 그분은 죽음의 사슬을 끊고 죽음에서 해방되었다. 스스로 자유로워진 예수는 우리를 율법과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였다: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 났습니다』(로마7, 6): 『여러분은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이제 정의 의종이 되었습니다』(로마6, 18):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되었습니다(Ⅰ고린15, 22)
3. 부활은 성령 안에서의 삶이다: 『그때는 예수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이 아직 사람들에게 와 계시지 않으셨던 것이다』(요한7, 39). 성부에게서 나와 세상에온 성자는 성부 및 성령과의 일치 안에서 항상 살았지만 세상을 떠나 성부에게로 되돌아가기까지 성부로부터의「격리」속에 있었다. 성부와 성자 사이의 이「간격」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써 완전히 사라져서 완전한 일치가 이루어졌다. 『예수는 큰소리로「아버지 제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하고는 숨을 거두셨다』(루가23, 46). 죽음은 성자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계셨던 성령을 성부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성부에게로 되돌아감이다.
그런데 부활하신 그리스도는『숨을 내쉬시며』(요한20, 22)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셨다. 부활은 일치 안에서 성령을 되돌려 받음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성부화의 재결합 안에서 성령을 주실 수 있게 되었다. 성부와 성자의 완전한 일치 즉 부활 안에서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발출하셨는데 이것이 세상 안으로의 성령의 파견이다.
강생과 빠스카 사건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상호 교류, 증여, 일치가 인간의 구원역사 안에서 실현된 사건이므로 인간을 위한 구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런 점에서 부활은 성령감림이며 우리로 하여금 성령 안에서 구원받고 새 생명을 누리게 하는 참 구원사건이다. 강생이 성부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자를 세상에 파견한 구원사간이라면 빠스카는 성부가 성자를 통하여 성령을 세상에 파견한 구원사건이다. 부활로 인하여 세상에 파견되신 성령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살아있는 주님으로 만나며 하느님을 아버지로 체념하며 또한 종말의 완성 즉 마지막 부활을 향해 성화의 길을 걸어간다: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계신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죽을 몸까지 살려주실 것입니다』(로마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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