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의 기쁨이 교회 안에 차오르고 있는 이때. 추워지는 날씨 속에서 더더욱 어깨가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이웃들이 있다. 어린나이에 가정을 이끄는「청소년가장」, 경제성장 그늘 아래서 소외 되 온「근로자들」, 속적관심과 정책적 배려가 절실한「사회복지 시설」, 삶의 터전을 파괴당한…「철거민」등등. 대림절을 맞아 이러한 우리 이웃들의 아픈 삶의 현장을 살펴보고 절절한 뒷이야기를 들어보는 시리즈를 4회에 걸쳐 게재한다. 이웃에 대한「공감대」를 형성하고 신앙인으로서「나눔…의 참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이다.
보사부 아동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청소년 가장 수는 총 6천 9백 10세대 (88년 3월). 부모의 사망이나 결손가정으로 생기는 청소년가장들은 경제적 빈곤과 함께 어린나이에 짊어져야 하는「삶의 무게」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재 서울 도림동본당 (주임ㆍ엄제라르두 신부) 빈첸시오회가 대상자로 활동하고 있는 미신자 장수정양을 통해「소녀가장」의 생활을 알아본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만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어요.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우리 3남매는 흩어지지 않고 이렇게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살 겁니다』
아래로 경숙 (서울 영등포 여중2) 승수 (서울 대영국1) 두 동생을 거느리고 있는 「소녀가장」장수정 (영등포 여상1) 양은 초롱한 눈매만큼이나 야무지게 삶에 대한 결의를 밝힌다.
오늘은 철모르는 막내승수에게까지 기도를 부탁할 정도로 마음 조이던 주산부기ㆍ타자2급 자격시험을 2번째 치룬 날.
「이번에는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밝은 웃음을 짓는 수정양이지만 웃음 뒤에 숨어있는 삶의 행로는 어린나이로 짊어지기에는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구비가 많은듯하다.
수정양이 소녀가장이 된 것은 지난 85년 12월 구청 청소부로 일하시던 아버지 장용택씨가 과로와 술로 인한 간경화증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던 어머니는 그보다 한해 전 목동 철거 와중에 행방불명 됐기 때문에 겨울바람이 시리는 벽제 땅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한 후 15살ㆍ13살 4살의 3남매는 그때부터 완전한「고아」로 새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둘째 경숙양은『아빠는 돌아가시기 2달 전까지도 배에 물이 차오른 채 일을 계속 다니셨다』면서『그때 우리가 조금만 컸었어도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서 아빠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소녀가장 장수정의 삶은 이때부터 시작이지만 돈이 없어 아빠마저 잃을 수밖에 없었던「가난」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그 가정을 따라 다녔다.
원래 수정양의 가족은 허허벌판이었던 목동 땅에 그대로 버려지다시피 한 철거민 가운데 한세대로 그런대로 오손 도손 살아오다가 지난 84년 아파트 건설 때문에 재 철거가 시작되면서 가정이 파탄 된 채 현재의 신길동 대영중학교 자리로 오게 됐다.
그때는 노인정에 임시로 머물고 있었는데 그것마저 중학교가 들어선다고 비워야하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3남매만 오도 갈데없이 남게 된 것.
경상북도 상주에 큰집이 있을 뿐 완전히 고아원으로 흩어져야하는 3남매의 딱한 사정을 안 신길3동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서 이웃집 2층 계단 옆에 방을 마련해주었고 이에 힘입어 상주에 가있던 막내 동생 승수도 작년에 데려와 3남매가 함께 살게 됐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구청에서 매월 쌀ㆍ보리1말과 약간의 생활비가 지급되고 수업료 혜택을 주며 또 큰일 때마다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 부모님이 없어도 그런대로 가정의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중학교 때 반장을 할 정도로 모범생인 언니를 닮아서인지 둘째 경숙양은 활달한 성품에 색동회주최 수기모집에서 대상에 당선될 정도로 글 솜씨가 뛰어나고 막내승수도 나이에 맞게 장난꾸러기로 자라고 있어 주위에서는「구김살이 없는 밝은 3남매」로 통하고 있을 정도이다.
얼핏 보기에 이제 수정양에게는 밥을 굶거나 동생들을 떠나 보내야하는「절대빈곤」은 사라진듯하다.
그러나 동생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을 보며 정말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으로서 하늘에 계신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올바르게 키우는 것인지「생활의 원칙」을 잡아나가는 것이 큰 어려움이다.
수정양은『막내 동생인 승수를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가 큰 고민』이라면서『승수가 잘못했을 때 그대로 화를 내야할지 매를 들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고 소녀 가장만이 느낄 수 있는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또한 주위사람들의 도움에 대해서도『늘 부담감을 느끼고 잘해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건지 왠지 막막한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어른스러워져야」만 하는 현실 때문인지 수정양은 부모 밑 에서 편안히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에 비해 생각이 성숙돼있고 그대로 앞날의 설계에 반영돼있다.
취직해 동생 승수를 대학까지 보내고 경숙이를 결혼시킨 후 자신은 미혼으로 고아원을 차리고 싶다는 것. 『제가 어려운 입장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지도 모르겠다』는 수정양은『특히 해외에 입양을 보내는 고아들을 모아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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