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아 있는 대로「황해도 감목대리구 폐쇄사」를 정리해 보겠다. 1948년 소련군이 북한에 있을 때 원산ㆍ덕원면속구가 폐지 처분을 받았고 이어 함흥교구도 폐지됐는데 그때의 정황이 정확히 교회사에 나오지 않아 섭섭한 마음을 금할길이 없다.
덕원수도원이 폐쇄된 후 주교ㆍ수사들이 몇일날 쫓겨나서 어떤 고초를 당했는지를 상세히 알고 싶었지만 기록을 통해서는 도무지 정확한 날짜를 알기 어려웠다. 기록에 의하면 함흥교구와 덕원면속구에서는 총 67명의 수도ㆍ성직자가 인치형을 당했다.
황해도 감목대리구에서 제일 먼저 제거의 대상이 된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때가 1949년 2월 5일.
왜 내가 황해도에서 제일 먼저 제거 대상이 됐는지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만 몇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 하나는 당시 성당 옆집에 살던 외교인이 와서 일러 준대로 내가 매주일 마다『이제 치명의 시기가 왔으니 순교할 마음의 준비를 다지라』고 한 강론이 생각난다. 그리고 1948년 성탄절 날 황해도 전지역에서 아무도 성탄 밤 미사를 봉헌하지 못했는데 나만 유독 밤 미사를 하고 연극과 노래공연까지 했던 일. 이 연극은 4막에서 공산당을 빗대는 내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위험천만 이었다.
또 하나 1946년 3월에 미화유치원을 폐쇄, 유치원을 접수하려던 내무서원들의 계획을 사전에 분쇄했던 일. 마지막으로는 몰래 감춰두었던 종을 꺼내 해방 다음날 신사(神社)가 불탈 때를 맞춰 20분간 타종했던 일이 떠오른다. 당시는 신천읍민들이 모두 성당 주변에 모여「성당에서 해방 종을 친다」며 환호를 보낼 정도로 큰 사건이었는데 이북에서는 민중의 동향을 꺼리던 터라 이 일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기억됐을 것 같다.
황해도 감목대리구에서 나에 이어 2번째로 체포된 사람은 해주의 한윤승 신부였다. 한 신부는 당시 이북에서 횡행하던 가짜 서북청년단원의 계략에 말려들었다. 1949년 체포, 해주감옥에 수감됐는데 그 후 신의주방면으로 이감됐다는 소식이 들릴 분이 정확한 행방을 알기 어렵다.
그 다음으로는 1950년 6월 24일 납치된 은율 윤의병 신부를 위시, 9명의 신부가 납치, 피살됐다. 납치된 신부는 다음과 같다.
악산 김경민 신부(1950년 6월 25일), 정봉 이순성 신부(1950년 7월 5일), 치화동 이여구 신부(7월 7일), 재령 양덕환 신부(10월 5일), 염이포 유재옥 신부(10월 5일)등이다. 송화 서기창 신부(1950년 10월 16일), 사리원 김남종 신부(1950년 10월 16일), 장언 신윤철 신부(미상)는 납치나 피살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9명의 신부가 납치, 피살됨으로써 황해도 감목대리구는 소탕됐다.
숨어 있다가 국군의 평양탈환에 맞춰 월남한 황해도 신부는 4명이 있다. 감목대리였던 사리원 박우철 신부, 수안 김충우 신부, 곡산 임충신 신부, 장연 강주희 신부 등이다.
이중에는 황해도 감목대리구 소속은 아니었지만 소련군 진주에 따라 48년 연길교구에서 추방돼 월남도중 감목대리 요청에 따라 황해도에 머물렀던 3명의 신부들도 들어있다. 김추무 신부ㆍ한윤승 신부ㆍ신윤철 신부들로 만약에 황해도에 들르지 않고 그대로 월남 했었으면 고초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모두 15명에 달하던 황해도 감목대리구의 신부들은 모두 이렇게 사라져 갔다. 피난지인 부산에서 은경축을 맞았을 때 정말로「개죽음을 당한」동창신부들이 생각나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세찬 파도와 같이 밀려드는 세월 속에서 나의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황해도 감목대리구도 사라졌고 정겨운 동창신부들과 교우들도 다 없어져 버렸다. 쓰리고 아픈 마음을 글로다 옮길 수 없지만 뒤돌아보는 세월은「상쾌한 느낌」마저 던져준다. 살아생전 내 고향 황해도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대미(大尾)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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