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항공공학자 장극 교수(75ㆍ바오로).
최근 한국 과학기술원 연구팀과 함께 연구 끝에 한국 최초로 4인승 경비행기의 전체 세부설계를 완성, 항공기 부품생산과 조립의 단계에 머물렀던 국내 항공 산업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장극 교수를 만났다.
75세 고령에도 불구, 학문적 열정으로 후학양성에 여념이 없는 그는 유체역학계에 있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독보적 존재다.
장 교수의 항공역학에 관한 저서인「유동의 박리」는 스페인어, 영어, 소련어판이 나왔고 영어판「유체흐름 분리의 조종」「최신 전개된 유동의 박리」등과 함께 전자의 두 권은 소련 등 공상권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교재로 사용 되고 있다.
특히「최신 전개된 유동의 박리」는 한국이 판권을 가지고 영어로 출판한 저서로 한국출한 능력을 세계에 보여준 학술서적이기도 한다.
모스크바대학과 미국ㆍ유럽아시아ㆍ남미 등 16개국에서 초청 강연을 한 바 있는 장 교수는 79년 한국과학기술원에 초빙교수로 오기 전까지 미국 워싱톤 가톨릭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장 교수가 항공공학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경성제대의학부에 재학 중이던 1935년 공학에 뜻을 두고 당시 공과대학으로는 유럽의 정상이던 베를린공대에 유학하면서이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뉴욕대학과 하버드대학을 거쳐 51년 노틀담대학에서 이학 박사, 63년 베틀린공대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록히드 항공사 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장 교수는 58년부터 79년 정년퇴임 때까지 미국 가톨릭대에서 강의했고 현재 동대학기계공학과 명예교수이기도 한다.
79년 한국과학기술원에 항공공학 과목이 개설되면서 모국의 강단에 선 장 교수는『근반세기 기간 동안 외국생활을 하다가 모국의 후학들을 교육하고 그들과 생활하게 돼 무척이나 가슴 설레고 기뻤다』고 귀국당시를 회고했다.
『비행기산업이 고등기술과 우수한 두뇌를 요하는 분야이자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기 때문에 천연차원이 부족하지만 재질 있는 인적자원이 풍부한 우리나라에 적합니다』는 장 교수는『교과서에만 의존하고 실습을 외면한 교육풍토를 개선해나가면서 꾸준히 기술을 축적하고 개발하면 항공기산업이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과학기술발전에 큰 몫을 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 교수는 공학자로서의 학문적인 공로와 가르침 외에도 평생을 연구와 교육에 투신한 학자로서 귀한 가르침을 학문과 인생의 후배들에게 남겨주고 있다.
『어떤 학문분야보다도「자연의 법칙」에 어긋나서는 안 되는 것이 자연과학과공학입니다』
따라서 장 교수는『공학도는 우선 정직해야 함』을 학생들에게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장 교수는 세계적 명성의 석학이면서도 성품이 겸허하고 소박해 학생들로부터 학문과 인생의 대선배이자 스승으로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실제로 그의 강의를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은『정직하게 양심적으로 살아야한다. 잘 할수록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는 말씀과 이를 몸소 실천하는 장 교수의 생활에서 깊은 감명을 받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사람이 잘못 살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며 잘못했다가도 뉘우치고 다시 선(善)으로 돌아올 수 잇는 양심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장 교수는 뿌리 깊은 가톨릭 집안에서 신앙을 키워온 독실한 신자이다.
그의 맏형은 초대 주미대사를 지낸바 있고 제2공화국 당시 국무총리를 역임했단 장면박사로 정치일선에서도 많은 정치가와 지식인을 전교ㆍ입교시켰고 퇴임 후 혜화동본당에서 활동했다. 또 장극 교수의 둘째인 장발선생은 서울미대 초대학장을 지낸 서양화가로 현재 명동대성당에 있는「14종 도상」등 성화부문에 많은 역작을 남겼다. 장극 교수는 누나인 장정온 수녀는「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초대 원장을 지내기도. 또 한국 교회 바티칸 외교의 창구로 한국 천주교 2백주년 기념행사의 핵심역할을 맡은바 있고 현재 서울 세계성체대회 준비위원회 사무차장 장익 신부는 장극 교수의 조카이기도하다.
『저녁때 온 가족이 모여 부친의 지도아래 기도하고 주일이면 성경을 봉송하던 기억이 생생하다』는 장 교수는 평생 아침ㆍ저녁기도를 잊은 적이 없고 지금도 매일 묵주신공3번, 15단과 용서ㆍ은혜를 구하는 기도 50번을 바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장 교수는『기도의 양보다는 기도와 묵상을 통해 얻는 기쁨과 은혜가 소중한 것이며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음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어린 시절 방학 때면 외삼촌이 수사로 있던 덕원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지내며 수시신부로부터 교훈을 받고 천주교교리와 신앙에 접할 기회가 많았다며 이렇듯 어려서부터 천주교분위기에 접해서인지 자신에게 신앙이「특별한 것」이라기보다는「자연스런 것」이라 밝힌다.
유럽유학이 그리 흔하고 쉬운 일이 아니던 시절에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서 외국인과 실력을 겨루고 가족과 헤어져서 꿋꿋이 삶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이 학문에 대한 집념 외에도『천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큰 힘이 되었다는 장 교수의 말속에서 하느님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믿음을 엿볼 수 있다.
미국에서 가톨릭교회 중 가장 규모가 큰「미 국민의 무염시태 대성당」이 있는 가톨릭대학에서 재직하면서 신앙이 더 돈독해졌다는 장 교수는 미국 워싱톤 근교에서 살면서 한인교포 2세들에게 우리말교육과 한국의 풍속ㆍ역사를 가르치기 위해「한인학교」를 세우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또 장 교수는 천주교 사목위원회 회장직을 맡아 워싱톤 근교 한인성당 설립에 주역이 되는 등 활발한 교회활동을 떨치기도 했는데 그것에서 신학생이 배출되는 것이 큰 보람이라고.
42세 되던 해 소아과의 사인 민화식 여사와 결혼, 슬하에 2녀를 두고 있는 장 교수는 가족과 헤어져 사는 불편이 있지만 여생을 모국의 항공 산업 발전에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여건이 허락되는 한 아는 것 모두들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주일이면 미사참례하고 형님 댁 조카들과 담소하는 것이 낙이며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 택시보다는 붐비고 흔들리는 버스를 애용한다』는 장 교수의 노안엔 석학으로서가 아닌 인자한 스승의 따뜻한 미소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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