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 찌는듯한 불볕 더위 속에서도 역 근처나 육교, 시장 등에서 신문지나 거적을 깔고 엎드려 구걸하는 이들이 아직도 도심 곳곳에 산재해있다.
사회에서는 이들을 「거지」혹은 「부랑인」이라고 부른다. 1975년에 발표된 내무부훈령 410조는 이들에 대한 사회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일정한 주거가 없이 관광업소·접객업소·역·버스정류장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 좌정하여 구걸 또는 물품을 강매, 통행인을 괴롭히는 걸인·껌팔이 앵벌이 등 건전한 사회, 도시질서를 해하는 사람」.
가진것 없는 것도 서러운데 사회로부터 냉대의 시선까지도 감수해야 하는이들.
「지극히 작은자 중의 한나」인 이들에게 대해 우리 교회는 얼마나 겸허한 자세로 그 아픔에 동참하고 있는가? 지역사회안의 각 본당은 어느 정도의 관심과 정성으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 교회안에는 일정한 주거지가 없는 무의탁노인·청소년을 돌보는 시설들이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수십군데에 달하고 있다. 시설 대부분은 신자들의 물적후원이나 봉사활동을 통해 본당들과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이중에서도 서울 영등포역 근처에있는 사랑의 선교회「행려자의 집」은 인근 본당의 각별한 관심과 배려속에 탄생, 설립초기부터 주목을 끌고 있다.
역과 도매시장이 인접해 하루 1백20만명의 유동인구가 드나드는 상업지역이며 주변에 윤락가와 빈민촌이 공생하고 있는 「영등포」.
이곳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또 흩어지는 곳으로 관할인 영등포본당에도 하루 평균 15명정도의 걸인이 구걸을 위해 다녀갈 정도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행려자의 집」은 지난 86년 8월 당시 영등포본당 주임이었던 엽수정 신부의 특별한 관심과 한신자의 물적지원,「가난한 자들과 함께 호흡하자」는 독특한 성소를 가지고 새 활동지역을 찾고있던「사랑의 선교회」수사들의 의지가 적절히 맞아떨어져 결실을 맺게 됐다.
86년 8월 개원미사로 활동을 시작한지 불과 1년밖에 되지않았지만「행려자의 집」은 정신적·육체적으로 주린 이들에게 따뜻한 밥과 국, 형제의 사랑을 전해주는 「쉼터」로 자리잡아 가고있다.
행려자의 집을 주로 찾는 이들은 날품팔이를 비롯, 알콜중독자·결핵환자 등 10대에서 8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루평균 여름에는 1백50명, 겨울에는 2백여명 정도가 이곳을 찾아 줄잡아 10만여명의 행려자가 식사를 했고 그중 1천명 정도는 재활의 의지를 불태우며 고향으로 다시 내려갔다.
행려자의 집이 이렇게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데는 「행려자를 위한 성미모음기도」스티커를 제작, 성미운동을 벌인 영등포본당 외에도 기타 20여개 본당 신자들의 도움이 밑거름이 됐다. 평균 하루 10여명의 봉사자들이 이곳을 찾아 반찬 만들기·설겆이 등 뒷치닥거리를 기꺼이 맡아하고 있다.
「행려자의 집」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이 오랜 떠돌이 생활로 의타심과 자포자기·일종의 자폐증 외에도 대부분이 결핵·간염 등 신체적으로 고통을 겪고있다. 이같은 이유때문에 행려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사랑과 재활할 수 있는 제반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78년 용산 시장내 노동자들을 위해 설립, 10년째 오갈데 없는 행려자들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해온 「베를레헴의 집」의 한 봉사자는『이들은 90% 정도가 심신장애를 가지고 있어한 겨울이면 맨땅에서 그대로 얼어죽을 수 밖에없는 가난한 이웃』이라고 밝히면서 『간경화증·중풍 등 중병에 시달리는 이들이 치료를 받아야할때 교회내 병원과의 연결이 쉽지않다』고 애로점을 털어놨다.
6·25동란이후 생겨나기 시작한 행려자들은 한국사회가 급격한 산업발전과 도시화를 이루면서 가족이 해체되고 지역공동체가 붕괴함에 따라 그수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따라 사회적인 관심도 증대, 86년말 현재 전국 36개 시설에 1만 6천여명의 행려자들이 수용돼있으나 이중 일부는 행려자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부산 「형제복지원」사건이 대변하듯 사회로부터의 「격리수용」의 차원에만 머물고있는 실정이다.
이와같이 사회전반에서 이들을 규제나 단속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적 사랑에 입각, 이들을 형제로써 포용하는 교회적 사명은 더욱 심각하게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각 본당 특히 시장과 역전이 가까이에 있어 행려자들이 많이 모여드는 지역의 관할본당들은 좀더 적극성을 띠고 「행려자 사목」에 임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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