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인의 의식구조에 근간을 이루고있는 것은 이분법적인 사유형식 (dualism) 이다. 서구의 종교사상이나 이데올로기 또는 학문의 연구방법을 보면 거기에는 주어진 모든 현상들을 서로 대립되는 두가지의 형태로 분류하여 양자간의 관계를 분석하려는 경향이 강한것으로 나타난다.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영혼과 육신, 성(聖) 과 속(俗),정신과 물질, 현세와 내세,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와-, 양자와 전자등은 이와같은 사유형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분법적 사고는 조화와 포용보다는 대립과 투쟁을 특징으로 한다. 서구인의 의식세계에 있어서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거꾸러뜨리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의 이데올로기들은 차갑고 배타적인 성격이 강하다. 서구사상의 변증법적 방법론은 바로 이와같은 그들의 의식세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인의 의식구조는 다르다. 한국인의 의식구조는 대립과 투쟁보다는 혼합과 융화를 특징으로 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사고속에는 유(有)와 무(無), 생(生)과 사(死) , 현실과 초현실, 인간세계와 신명세계(神明世界)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연속선 위에 놓여져 있다. 뿐만아니라 한국인의 의식구조나 문화형태는 이질적인 것을 배척하기 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여 기존의 것들과 혼합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인들이 외래문화를 곧잘 받아들이고, 또한 받아들인 것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 보다는 한국적인 것으로 대부분 변형시키는 것은 이러한 한국인의 심성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신흥종교들은 바로 이와 같은,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사유형태를 바탕으로 자신의 교리와 사상체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계 신흥종교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교리나 사상은 서구의 이분법적 사유형식과는 전혀 다른 혼합주의적인 성격(syncretism)을 띠운다. 이들의 교리와 사상에 있어서는 신과 인간, 성과 속, 영혼과 육신, 정신과 물질, 종교와 과학이 분리된 실체가 아닌 통합된 실체로 파악된다.
이러한 한국 신흥종교의 특성은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
우선 그들의 종교적 구성요소들을 보면, 거기에는 그리스도교·유교·불교·도교·무속의 성격이 거의 빠짐없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들의 신관(神觀)에는 그리스도교의 창조주와 인격신의 성격이 강하게 포함되어 있고, 윤리는 충·효·열 (忠孝烈) 이라는 유교의 윤리가 그대로 전승되고 있으며, 종교의식은 불교적인 성격이 강하다. 또한 그들의 수련방법은 송주수련(頌呪修練) 의 도교적 색채를 띠우고, 신앙유형은 해원(解寃)과 신바람이라는 무속적 성향을 갖는다.
이러한 혼합주의적 성격은 자연발생적인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도적인 것이기도 하다. 예를들면 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은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하나의 종교만으로도 능히 난국을 바로 잡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종교와 문화의 진액을 뽑아모아 하나로 통일시켜 사용치 않으면 난세를 바로 잡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설법은 대부분의 신흥종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모든 종교들을 하나로 통일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는 교단 명칭에서도 표현된다. 세계기독교 통일신령협회(통일교)·세계종교연합법황청·세계일가공회·세계종교통일본부·한국대도법황청지상천국건설본부·세계일주평화국(世界一主平和國)과 같은 명칭에서도 보여지는 바와 같이, 이들은 모든 종교를 통일시킨다고 하면서 그 주체는 자기교단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모든 종교들을 통일시켜야만 지상천국이 건설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이들의 종교사상을 보면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성향을 띠운다. 서양의 종교가 신중심주의(theocentrism)를 특징으로 한다면 동양의 종교들은 인간중심주의 (anthropocentrism)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신흥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신이 내재되어있다는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 사상, 천·지·인(天地人) 중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인간이고 신은 인간이 부리는데 따라 흠향될 뿐이라며 신인합발(神人合發)을 강조하는 증산교의 인존사상(人尊思想), 홍익인간(弘益人間) 과 삼진귀일(三眞歸一)을 강조하는 대종교의 교리, 그리고 원 불교의 법신불일원상(法身佛一圓相) 신앙 등은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분리된 실체로서가 아니라 통일된 실체로 보는 한국적 사유형태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분법적 발상의 거부는 聖과 俗, 물질과 정신, 종교와 과학을 통일하려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종교란 속(俗) 의 세계와 물질세계, 그리고 과학의 세계까지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질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심과 노력이 하느님의 창조목적 달성에 일차적 조건이라며 종교와 과학의 통일을 주장하는 통일교, 만물을 바로 사용하면 영원한 왕권(王權) 의 영광을 받게된다는 새일수도원, 신·인·물(神人物)이 통일되어야 지상천국이 이루어진다는 세계일가공회의 주장 등은 이러한 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교와 전도관에서 수많은 기업활동을 전개하는데에는 이와 같은 그들 나름대로의 교리가 뒷받침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세운 기업과 공장에서는 노사분규가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물질세계를 정복하는것이 자신의 사명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통일시키고자 하는 한국신흥종교의 사상은 이밖에도 모든 민족과 인종의 통일, 정치와 종교의 통일을 주장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성속융합(聖俗融合)·영육쌍전(靈肉雙全)·정교일치(政敎一致) 야 말로 한국 신흥종교의 중요한 사상적 통일이며 그리스도계 신흥종교들이 기성교회로부터 이단(異端) 이라고 규탄받는 신학적 근거로 지적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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