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난민지역을 첫 방문하고 돌아온 후 이곳에서 살기위해 보름가량을 방콕에 머물면서 크메르어습득을 대강 마무리 했다.
3월 29일 최홍대 수사와 나는 제2난민지역으로 출발했다. 최홍대 수사는 스페인 예수회 신학생인 키크가 프로그램을 만든 장애자들을 위한 기술학교에서 일하기로 결정돼있었다. 반면에 나는 난민촌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어디에 숙소가 정해졌는지 등 모든 것이 불분명한 상태로 있었다. 단지 프랑스에서 활동하다가 작년에 귀국, 이곳에서 고아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는 섭리회 소속 아쓰 수녀와 함께 일하게 될 것이라는 것뿐이었다.
차를 타고 거의 2백km를 달린 뒤 우리들은 조금 쉬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다.
여기서 알퐁소 신부는 우리에게 숙소에 관한 의향을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따로 생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숙소는 두 곳에 있었다. 한곳은 내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탑라야(TAPRAYA)로써 제2난민지역에서 25km떨어진 곳이며 다른 한곳은 여기서 75km떨어진 아란얍라텔(Aran Yaprathet)으로써 최홍대 수사가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우리는 저녁 늦게 아란(통상 이렇게 부른다)에 도착, 강우 속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난민촌 식구로서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밤을 보내면서『나는 이들에게 외국인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과 내가 판단하고 이해하는 기준은 한국적 사고방식 이라는 점을 염두 하였다. 그래서 앞으로 난민촌에서 생활할 때 모든 현실들을 쉽게 판단하지 말 것이며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다짐했다.
이제 어떤 면으로 나는 월급쟁이가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난민촌본부에서 월급을 받기 때문이다. 성직자 수도자는 일률적으로 미화 1백60불(태국 돈으로 4바트)을 받는다. 이곳에서는 수도원처럼 돈을 공동 관리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각자월급으로 자기 생활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3월 30일 우리는 난민촌에 들어 갈 수 있는 허가증을 태스크 폴스80(Task Force80)에서 받아서 점심때쯤 난민촌에 도착했다. 태스크 폴스80은 태국 국경지역에 난민촌이 형성되기 시작한 1980년대쯤 난민촌의 경비와 난민보고, 국경경계를 위해 조직된 단체로서 정식군대는 아니다.
처음 일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우리들도 키크의 안내로 난민촌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키크는 주로 장애자들을 위한 기술학교를 안내했다. 장애자들은 주로 불구자를 지칭하는 것이다.『전쟁 중에 손과 다리 또는 신체 한 부분을 잃은 사람들은 이 난민지역에 약3천여명이 있다』고 키크는 말하며 그의 학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프로그램 중에는 주로 기술을 가르치는 과목들과 문맹자들을 위한 크메르어반도 있었다.
반나절은 난민촌에서 보낸 뒤 짐을 정리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왔다. 짐을 싸고 짐을 풀고 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똑같이 반복되는 일이듯이 이 삶의 매순간도 싸고 풀고 하는 반복의 순간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주소=Cabriel Byeong Young Je, S′ TBox2 TAPRAYA PRAC HINBURI 25180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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