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종교의 도전에 대한 범교회적 차원에서의 대책방안은 앞에서 언급한 교황정의 연구를 통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는 한국사회의 정황에 비추어 필자가 생각하는 방안들을 나름대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이 방안들은 신흥종교의 급증과 거기에 따른 문제들은 한국사회의 구조적 특성의 변화뿐만 아니라, 한국 기성종교들의 구조와 기성종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쇄신됨으로써만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1)민족사와의 만남
한국의 신흥종교들은 민족의 수난과 고통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면서 민족종교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낸다. 이들의 교리와 사상에서 공통적으로 추출되는 선민사상과 해원사상은 이러한 노력의 종교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근세사와 한국교회사는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한국인의 자주적은 노력에 의해 창립되었다. 이것은 가톨릭의 수용과 교회의 창립이 민족사적 요구에 의한 것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역사적 전통은 오늘의 시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민족사속에 살아 숨 쉬는 민족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복음이 민족의 현실과 만나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복음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이며, 신앙의 핵심이다. 그것은 변질될 수 없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적인 핵이다. 필요한 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복음을 재조명하고 재해석 하는 것이다. 한 종교의 생명력과 역동성은 창교 이념의 근원적인 변화가 아니라, 변화된 조건에서 그것의 의미와 그것을 구현시키는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시대적 상황에서 복음의 본질과 그 실존적 의미를 되묻는 작업이야말로 복음이 한국사회에 육화되는 작업의 첫걸음이며, 복음의 토착화와 한국문화의 복음화를 이루는 기본 작업인 것이다. 또 그것은 복음의 화석화를 방지하는 작업이고, 복음과 교회가 자신의 존재의미와 시대적 사명을 밝히는 길이며, 동시에 교회의 자기쇄신의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복음이 민족사와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 오늘의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과 오늘의 시대적 상활에서 요구되는 발전가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것을 복음에 따라 해석하고 판단하며 보완하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그렇게 하여 보완된 가치들은 사회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복음정신에 위배된 것들은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에 따라 비판되어야 하고 사회발전에 필요한 가치들은 교회의 활동을 통해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의 가정문제를 가져오는 근본원인인 불평등ㆍ부정의ㆍ갈등ㆍ분단 등은 복음정신에 따라 비판되어야 하고, 참된 민주화ㆍ정의의 실현ㆍ평화건설ㆍ민족통일 등을 위한 활동들은 복음에 토대하여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의 토착화는 인간의 총체적인 삶과 그 삶이 이루어지는 현실 전체를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일치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위배되는 것을 바로 잡고, 종말론적 약속의 실현에 필요한 가치들을 역사와 현실의 상황에서 찾아 내여 보완하고 구현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 안에서 옳게 전달되고 힘 있게 실천되고 따라서 한국교회는 민족종교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2)민중과 함께 하는 교회
신흥종교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눌린 민중의 종교로 발생한다. 신흥종교 신자들의 대부분은 억눌리고 소외된 민중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고통, 그리고 자신들의 한(恨)을 풀기위해 기성종교를 찾았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기성종교에서 위안을 얻지 못함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또 한 번 상처를 받고 신흥종교를 찾는 자들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교회는 양반계급에 의해 창립되었지만, 극심한 박해를 받으면서부터는 억눌린 민중의 종교로 기능하여 왔다. 적어도 일제시대까지는 대다수의 신자들이 무식하고 빈곤한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필자가 2백주년 사목회의 당시와 작년도에 조사한 분석결과에 따르면 한국교회의 주도계층은 중산층인 것으로 나타난다. 작년도에 조사한 결과를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가톨릭신문사간행 참조)경제기획원에서 발표한 한국인의 생활 자료와 비교해 보면 만20세 이상 인구층 가운데 고등학교졸업이상자들의 비율은 한국인 평균이73%임에 비해 가톨릭신자의 경우에는71.9%이고 가구주의 직업 중 관리직과 전문직 종사자의 비율은 한국인 평균이 2.2%임에 비해 가톨릭신자의 경우에는 7.6%인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86년 말 현재 가구당 월평균 소득액은 한국 평균이 49만원임에 비해 가톨릭신자들의 경우에는 59만원인 것으로 밝혀진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이제는 중산층 중심의 종교로 변화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중산층이 중심이 된 종교에서는 모든 가르침이나 교회활동이 중산층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하류계층은 적응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하류계층이 사회에서 받는 소외의식과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교회를 찾더라도 또다시 소외와 상처를 받음으로써 이중소외를 체험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극복하는 방법은 교회가 민중과 함께 하려는 자세를 나타내는 것이다. 비만증은 유연성을 상실케 하고 각종 질병들은 유발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 비만증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기가 가진 영양분을 자기가 모두 섭취하기보다는 남에게 나누고 필요한 운동을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산층화 된 교회가 질병을 예방하고 비만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고도성장이라는 허울 속에 가려진 소외되고 억눌린 이웃들과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며, 민중의 한과 아픔을 함께 하고 그것을 해결해주려는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민중을 위하겠다는 높은 자세(For the people)가 아니라, 민중과 함께하고(with the people) 민중 속에 살겠다는(in the people) 낮은 자세이다. 그래야만 민중은 교회를 자신의 진정한 피난처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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