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의 의무
히브리어에는 자선을 뜻하는 특별한 용어가 없고, 70인 역본에 쓰이는 그리스어 엘레모시네(ele-emosyne)는 하느님의 자비 혹은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성실한 응답인 정의 혹은 동족을 위해 베푸는 자비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 상호간의 자비는 행위로 표현되지 않으면 진정한 것이 아니다.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자선의 규정은 확실히 고대로부터 전래된 것이고, 여기에는 수확할 때 이삭을 남기고, 포도를 속속들이 뒤져 따지 말고 남겨두어야 할 의무 혹은 삼년마다 소출의 십일조를 레위인, 떠돌이, 고아 과부처럼 소지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저장해 두어야 할 의무들이 규정되어 있다. 게다가 가난한 자들이 있는 한 너그러운 마음으로 정성껏 그들의 호소에 응하여야 한다(신명24, 20-21:집회18, 15-17:신면15, 11:잠언3, 127-28)
자선과 종교생활
구약에 있어서 자선은 단순한 박애가 아니라 종교행위로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너그러움의 표시는 축제의 정점을 이루었다(신명16, 11, 14: 토비2, 1-2). 자선은 결국 하느님께 행하는 일이면 하느님의 보답과 죄의 용서를 받을 자격을 얻는다(잠언21, 13:집회3, 30). 그래서 자선은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와 같고(집회35, 2)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다(집회29, 12).
예수 그리스도와 자선
예수 그리스도의 내림과 더불어 자신은 여전히 그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신약의 새로운 종교생활에 새로운 의미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예수께서는 자선을 기도와 단식과 더불어 종교생활의 삼대지주의 하나로 여기셨다(마태6, 1-18).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선을 권하시면서 이해타산이 없어 나팔을 불지 말고 되받을 생각 없이 제한 없이 행하도록 요구하신다(마태6, 1-4:루가6, 30:6, 35). 더구나 예수께서는 불행한 형제에게 베푼 자선은 당신자신에게 행한 것이라고 천명하신다(마태25, 31-46).
예수의 제자가 가진 바 모든 것을 자선해야 하는 것은 먼저 자기재물에 집착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함이며(마태19, 21:루가11, 41:18, 22)부유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해지셨고 가난해지심으로써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이다(2고린8, 9).
교회와 자선
우리가 그리스도와 결합되기 위해서도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어야한다.『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받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겠느냐?』(1요한3, 17). 더 나아가 자기가 가진 것을 형제와 나누지 않고서 어떻게 성찬의 나눔의 신비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1고린11, 20-22)
자선은 교회 상호간에 일치를 가져온다. 사도바울로가 예루살렘의 모 교회를 위한 모금에 대하여 그것을「거룩한 봉사」(2고린8, 4)또는「전례」(2고린9, 12)라고 부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성 빈첸시오 아 바울로 생애
초대 교회부터 교회는 자선에 힘써왔고 모든 성인 성녀들이 자선의 모범자들 이기도하다. 그러나 이 모든 분들 중에 성 빈첸시오 아 바울로(1580~1660)는 모든 자선 단체의 수호성인이다.
그는 프랑스의 푸어에서 6남매 중 3째 아들로 태어나 닥스 대학교와 뚤루즈 대학교에서 수업한 후 1600년에 사제로 서품 되었다. 1605년에 유산문제로 마르세이유에 돌아오던 중 해적들에게 잡혀 알제리아의 노예로 팔리는 불운을 겪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2년 후에 탈출하여 1625년에 농부들에게 선교하는「빈체시오와 라자로회」를 세우고 가난한자들을 돕기 위하여 본당단위를 구성하기 시작하여 1633년「애덕회」를 창설하였고 병원과 고아원을 세웠으며, 그리스도인 노예를 해방시켜 주었고 새로운 신학교를 세워 사제양성에 적극 지원하는 등 많은 일을 하였다.
성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와 자선
이 성인의 정신을 거울삼아 올림픽 재건에도 공이 큰 프랑스인 프레데릭 오자남 등이 세운 성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는 1961년 한국에 들어온 이래 1천5백명 이상의 회원들이 나팔을 불지 않고 전국 여러 본당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무관심으로 이 단체가 없는 본당도 너무나도 많다. 그리스도교 종교생활의 삼대지주(단식ㆍ기도ㆍ자선)의 하나인 자선을 위한 이회에 성직자 수도자 및 평신도들이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려 주었으면 한다.
『남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은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지회3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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