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시고 예수께서는 그 제자들과 함께 온 하루 동안 여행을 하셨다. 아마도 베타니아에서 가나로 가시는 길이었을 것이다. 사흘째 되던 날 가나의 혼인잔치에 가셨다고 요한복음사가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하는 새 창조의 제7일째가 된다. 이 사흘째라는 기간을 복음서에서는 운명적인 기간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사흘날에 부활하신 것을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운명의 사흘 동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가나에서 있을 혼인잔치에는 예수의 어머니께서도 거기에가 계실 것이다. 예수께서 어머니와 떨어져 있은 것은 두 달 가량이었다. 어머니와 헤어질 때 거기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을까. 아니면 나중에 만난 나타나엘의 초청으로 제자들과 함께 혼인잔치에 가시기로 했었을까. 하여튼 나타나엘은 가나에 자기집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고,어떤 학자들은 그 혼인잔치의 신랑 될 사람이 바로 나타나엘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치 않다. 예수의 일행은 오륙십리길을 실컷 걸어서 가나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잔치는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유대아인들의 혼인잔치는 여드렛 동안 걸린다. 친척들은 물론이고 친지들이 모여 미상불 축제를 벌이는 것이었다. 예수의 어머니는 이미 그곳에 와계셨다. 예수의 첫 번째 제자 중 한사람이 된 요한에게 마리아는 대단히 소중한 부인이었다. 요한복음서에서 예수의 어머니로 등장시키고 구세 사업을 마치는 마지막 날 십자가 밑에 등장시킨다(요한19장25). 그리고 복음서를 통하여 요한은 마리아라고 이름 부르지 않고 예수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라고 자신을 가리켰고 어머니로 모시라는 마지막 부탁을 받은 요한의 존경심에서였을까. 처음 만나는 제자들에게 비친 마리아상은 남의 공경을 돕기 위하여 예수께 청탁을 드려 일을 해결하는 인자한 어머니였다. 그런데 이 모자간의 대화는 어머니와 아들간의 대화가 아니고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과 그 어머니 되는 사적인 사람간의 대화이다. 마리아는 이 혼인잔치 집과 꽤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다. 단순한 손님노릇만 한 것이 아니고 주방에서 주인을 도와 상차림을 거들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잔치가 더 성황을 이루어서 일까. 잔치도중에 술이 떨어졌다. 잔치도중에 손님은 모여들고 술이 떨어지면 주인에게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 난처한 사정을 지켜보고 있던 마리아는 아들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이젠 됐다 싶었다. 마리아는 어떻게 아들이 이럴 때에 무슨 좋은 수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성서가 아닌 외경문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자라는 과정에서 기적을 많이 행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신빙성은 없는 문서이지만 외경의 기록대로 예수의 기적능력을 마리아가 벌써 알고 있었을까. 아무튼 마리아는 아들에 대한 신뢰심이 확고하였다. 복음서에는 예수의 기적을 모두 공적인일로 취급하고 있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마리아에게는 당연한 일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그래서 아들에게 슬며시 다가가서 속삭이듯 말했다. 이집에 술이 떨어졌다고. 이미 공적인 생활로 나선 예수의 대답은 사뭇 공적이었다:『부인,그것은 저나 부인이 상관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공적인 일이란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일을 가리킨다.
이런 종류의 대답은 12세 때 성전참배 했을 때 어머니와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후에『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자매이냐.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준행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자매이다』라고 말씀하실 때에도 같은 맥락의 말씀이다. 여기서 예수는 아무리 공적인 일을 들어 말씀하신다 해도 어머니를 보고 부인이라고 부른 것에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공동번역에서는 이 말을 어머니라고 번역하였지만 원문의 부인이 라는 말은 사도교회에서는 특별한 뜻을 지닌다. 우선 귀부인이라는 존경과 애정을 겸한 뜻을 지녔을 뿐 아니라 신약성서에서는 예수의 복음을 위한 사목에 헌신하는 열성적인 부인들을 가리켰다. 요한이 자기 복음어에서 예수의 입을 통하여 어머니를 보고 부인이라고 부르게 함으로써 마리아가 이미 예수의 구세 사업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구세 사업을 끝마칠 때에도 예수께서는 어머니를 향하여 부인이라고 불렀다. 교회의 어머니라는 뜻이다(요한19장26). 그 일은 남을 돕기 위하여 아들에게 간청해주는 일이다. 그 후부터 오늘날까지 마리아는 기도의 전달자,공경에 빠진 모든 사람들의 해결사인 어머니,그에게 달려드는 모든 사람의 인자하신 어머니로서 마음속에 있게 된다. 마리아는 일꾼들에게 일렀다.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 이 말은 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하여 요셉을 가리키며 백성들에게『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대로 하라』고 한말이다.(창세41장55) 파라오와 온 백성의 목숨이 요셉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말이었다. 기적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줄 때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어머니 마리아의 간청으로 그 일은 앞당겨졌다.
예수께서는 어머니의 요청을 들어주셨고 일꾼들에게 빈항아리 6개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셨다. 그 물은 유대아인들이 잔치집에 들어갈 때 손발을 깨끗이 씻는 청결용이었으나,그 물은 옛 물이 아니고 새 술로 변하였다. 과방은 그 술맛이 좋은데 놀라기까지 하였다. 물로세례를 주던 세례자 요한의 시대,물로 깨끗이 하던 구약의 시대는 지났다. 이제부터는 포도주로 음식을 하게 될 성체성혈의 새 시대가 온 것이다. 후에 예수께서는 오천명을 기적의 빵으로 먹이면서 새 시대를 확실히 알릴 것이다. 이 시대는 구원의 시대이며『전능하신 주 하느님이 다스리는 시대,어린 양의 혼인날이다. 기뻐하고 춤추며 그 분께 영광 드리자』(묵시19장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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