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서울대교구 구천우 신부에 이어 이번호부터는 대구대교구 이기수 몬시뇰의 회고 연재한다.
이기수 본시뇰은 1899년 12월23일 경남 밀양군에서 출생, 1926년 사제로 서품됐다. 전주ㆍ대구서 사목활동 후 1970년 은퇴한 이 몬시뇰은 현재 경북칠곡군동명면 구덕동에서 생활하고 있다.
나는 아버지 이성택(베드로)와 어머니 이옥순(요안나)사이의 4남2녀중 장남으로 경남 밀양군 산내면 개인리 2369번지에서 태어났으며, 때는 1899년12월23일이다.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12월23일이 지나면 9순에 접어드는 셈이다.
그때는 고종황제 때(고종36년)로 사람들은 상투를 틀고 댕기를 매고 다녔는데 지금사람들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시대였다.
큰 부자는 아니었으나 동네에서 그런데로 잘사는 편이었던 우리집안은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신앙을 가졌던 열심한 구교우집안이었다. 저녁이면 집안 식구들이 함께 모여 저녁기도를 바치고 매괴신공을 염했던 기억들이 새롭다. 지금은 대부분의 신자들이 미사참례만으로 신자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나 그 당시는 일상기도 매괴신공 경본암기 등이 신자의 본분으로 당연히 여겨지던 때였다.
할머니는 종종 우리형제들에게 증조할아버지 얘기며 숨어서 신앙생활을 했던 할머니의 지난시절 얘기들을 해주시곤 했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선비셨던 증조할아버지는 신앙을 가진 후 그 당시 횡횅하던 양반들의 비리를 거부하고 어렵게 사셨다고 한다.
한불조약체결 등으로 박해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으나 농촌에서는 박해가 계속되고 있던 어느날 증조할아버지는 포졸들에게 잡혀 끌려가게 되었다. 이때 함께 끌려가던 분들이 지금 대구복자성당에 묻혀있는 순교자 허인백(야고보) 이양등(베드로)이였다. 이분들과 함께 울산영문까지 가던 도중, 증조할아버지는 포졸들이『기운도 없어 보이고 일도 못할 것 같다』며『가기 전에 송장부터 치울 것 같으니 집에 가라』고 하는 바람에 치명자가 되지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 이일로 증조할아버지는 치명자가 되지 못한 것을 평생 가슴아파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울주 사람이었으나 할머니와 결혼한 후 언양에 살다가 밀양으로 넘어오셨다. 그당시 언양 강월산에는 교우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왔던 교우들도 굴을 파놓고 신앙생활을 했다고 한다.
한번은 할머니가 사발같이 생긴 그릇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신부님이 종부성사를 준 경우 집에 가서 성체를 영하도록 성체들 배정해준 그릇이었다.
이 그릇은 우리집안 기념물인데 제대로 보관을 못해 분실하고 말았다.
어릴 적 기억으로 신부님은 매우 무서운 분이었다. 그 당시는 봄ㆍ가을로 신부님이 순시를 오셨는데 마산의 무 신부(문제만 신부)가 함안에서 삼랑진 밀양까지 관할을 하시던 때였으므로 문 신부 밑에서 교리문답 찰고를 받았다. 평소에는 신부님을 좋아해서 따르던 신자들도 찰고 때는 신부님 불호령이 무서워 신부님 곁에 가지 않으려 했다. 제대로 대답 못해 매를 맞은 기억도 난다.
12살까지 산에서 나무도 하고 소꼴을 먹이는 등 집안일을 돕던 나는 13살이 되어 문 신부의 권고로 문 신부가 직접세운 마산 성시학교에 입학했다.
1년에 등록비가 60원이었던 성지학교는 당시 소학교로서 현재의 초등학교 과정이었다.
전교목적으로 세워진 학교라 신부님들이 교리를 가르쳤고 교우아이들에겐 특별히 신경을 써주었다. 말이 학교지 서당 한가지였다. 나는 16살 때까지 경부선기차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졸업한 나는 산림관이 되고 싶었다. 금테 둘러진 옷을 입고 금 칼을 차고 산림을 측량하는 산림관이 매우 좋아보였고 돈벌이도 괜찮을 것 같아서였다.
또 이러한 산림관을 양성하는 산림학교도 있던 터라 내신 산림학교에 지원하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자주 오시던 신부님이『신부가 되면 어떻겠느냐』고 끈질기게 권유하였고 이러한 뜻이 전해지자 집안에서도 대환영이었다.
맏아들인 경우 신학교 가는 것이 금기사항으로 여겨지던 때였으나 우리집안은 워낙 열심한 집안이었고 형제들도 많아 신학교입학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나도 처음에는 별 마음이 없었으나 나중에는 신부님 뜻에 따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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