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안에서 살아계시는 부활하신분의 구원적 기능들은 흔히 삼중기능 즉 하느님의 계시자, 사제, 주님으로 설명되어왔다. 이 도식은 성서의 풍부한 내용들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결함을 안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중재행위의 기본측면들을 드러내는 장평을 지닌다. 성부께로 인도하는 분(목자), 하느님의 진리를 계시하는 분(예언자), 생명을 주는 분(영원한 대사제):그리스도는 길, 진리, 생명이다.(요한14, 6)
종말론적 예언자
『부활 후 신앙이 현양되신 주님을 예언자로 고백할 때에 예수의 전권주장을 확인한다. 예수는 자기의 특유한 권위의 원천인 성부와의 심오한 일치로 말미암아 절대적이고 유일회적인 하느님의 구원계시, 종말론적 예언자이다. 우리가 생명을 가지려면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Chㆍ뒤꼭). 예수는 하느님 말씀이고 모든 사람을 비추기 위하여 세상에는 빛이다.(요한1, 1ㆍ9)영광스럽게 된 예수는 이미 지상 생애 중에 성부의 계시자이다. 예언자, 스승, 하느님의 말씀, 어둠속에서 빛나는 빛(요한8, 12)인 예수는 진리이다.『자유롭게 하는』진리(요한8, 32)이다. 하느님의 충만한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역사의 과정 속에서 현존하며 심화된다. 진리의 성령을 믿는이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주께서 말씀하신 것을 상기시켜주고 온전한 진리에로 이끈다. 회랍어 진리에 해당되는 헤브레아어 emet(견고하다, 인정된다 라는 뜻의 amdn에서 나온 말)은 어떤 사람에 대한 신뢰와 충실을 뜻한다. 성서의 세계 안에서 진리란 역사의 과정 중에 체험되는 상호 인격적 관계이다. 진리의 반대는 지속적 신뢰의 유대가 단절되는 것이다.
빠스카 신앙은 예수를 진리로, 성령으로 묘사함으로써 나자렛 예수 안에서 하느님의 신실이 처음이자 마지막 즉 결정적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고 이 신실이「협조자」의 능력에 힘입어온 세대에 확대될 것이라 말한다. 성령은 하느님의 사랑을 현존시키며 그 사랑의 자유롭게 하는 힘을 신앙인이 파악하도록 그들의 눈을 뜨게 해 줄 것이다. 약속에 신실하도록 해주며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미래에로 향하게 해줄 것이다. 성령 안에서 종말론적 예언자의 진리는 능력으로 주어진다.
목자이신 왕
예수는 하느님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자유로운 분이다. 빠스카로 인하여 이 자유는 주예수의 왕권 즉 모든 피조물에 대한 절대적 자유와 우주적 주권으로서의 왕권을 충만히 나타낸다. 그분은『복되신 주권자, 왕중의 왕, 군주중의 군주』(묵시19, 6)이다. 한편 그분의 자유가 사랑안에서의 자유이므로 그 왕권은 봉사와 선물로 나타난다. 그분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매달린 왕, 세상의 왕이 지니는 모습과 정반대 형상의 왕이다. 평화의 왕, 지상적 야망이 전혀 없는『나귀를 탄』온순한 왕이다.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러 온 예수는 자기 양들을 바치는 착한목자이다. 수난 중에 그분은 버림받은 목자가 될 것(마르14, 27이하)이지만 마지막 날의 영광중에 염소와 양들을 갈라놓는 목자가 될 것이다.(마태25, 31이하). 부활의 공동체는 그분을「위대한 목자」(히브13, 20)「우리영혼의 독자, 보호자」(1베드2, 25)「목자의 으뜸」(5, 4)이라 고백한다.
왕이며 목자인 예수는 종이 된 주님이고 봉사하는 자로 자기사람들 가운데 계신다. 그분의 왕적이며 목자적 봉사는 사람들을 아버지에게로 인도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길, 생명과 진리에로 이끄는 살아있는 길이다.(요한14, 6:사도9, 2:18, 25이하).
예수의 이 목자적 왕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땅의 주변에까지 확장될 것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의왕다운 자유를 현존시킨다.『주님은 영이시고 주님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2고린3, 17) 성령 안에서 주님이 되신 예수는 성령 안에서 왕권을 행사한다. 예수의 주권을 알아보게 하는 것은 성령의 일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 없이는『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없다.(1고린12, 3)
영원한 대사제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요한10, 10)예수는 자기 목숨을 제물로 바치므로, 십자가에서 자유로이 목숨을 내어놓음으로써 생명을 준다.(1요한3, 18)그분은『세상의 죄를 없애주는 어린양』빠스카양(1고린5, 7)죄인들을 위하여 희생된 무죄한 의인(사도8, 32)이다.『성령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흠없는 제물로 바치신 분』(에페5, 2)은 새로이 생명을 받고 또 그것을 넘치도록 전해준다.(요한4, 14:5, 26) 이와 같이 그분의 희생적 죽음은 죄악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그분의 주권을 예비한다(로마14, 9참조). 또한 우리를 하느님 안에 있는 생명력 안에 끌어들이기 위하여 우리의 연약함을 취한다.
그분은 자기 생명의 희생적 봉헌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므로 대사제이다.(히브3, 1참조)희생이란 하느님에게로의 귀환, 내적 봉헌의 표징으로 하느님에게 의적으로 바쳐드림,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온 백성을 위한 찬미와 인식과 간구를 표현하는 실제적 상징이다. 예수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죽음에 내어줌으로써 하느님에게 귀환하였다. 즉 우리를 위한 자발적 포기의 고통 속에서 성부에 무조건 자신을 바쳐드렸다. 부활은 성자의 봉헌을 수락하신 하느님의 응답이다. 이 응답의 결실로 하느님의 은혜로운 생명, 성령이 주어졌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생명, 새롭게 영원한 계약의 사제인 그리스도를 현존케 하며 우리를 삼위일체의 생명 안에 참여시킨다.
유일한 중재자
그리스도의 세 역할은 내적으로서도 연결되어 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의 행위의 세측면으로서 성령이 각 시대에 그 내적이고 온전한 역동성 안에서 그 기능들을 현존케 하고 효력을 발생케 한다. 세 기능들의 단일성과 온전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중재」로 불리 운다.(1디모2, 5이:히브8, 6:9, 14이하)
예수는 성부로부터 성령을 충만 받고 또 사람들에게 충만히 주는 메시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이 성부로부터 사람에게 오며(하강중재), 같은 성령 안에서 인간이 성부에게로 나아간다(상승중재). 그분의 중재 안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은 인간과 결합하신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의 세계의 인간의 세계가 영원히 만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으로서 항상 살아계시어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며(히브7, 25) 성령 안에서 온 세기에 걸쳐 현존하기 때문이다.
중재자 그리스도가 실현하는 구원은 신적 생명에의 참여,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부와의 친교이다. 그리스도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아들 안에서 자녀가 되며 삼위일체와의 친교의 평화를 미리 맛보고 하느님의 마음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서 사랑하고 희망하기를 배운다. 이세상 안에서 순례하며 가는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사람은 부활과 생명의 힘을 끊임없이 얻을 것이다. 그는 죽음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생명 안에서도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기만을 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우리가 살아있는 죽어있는 당신과 함께 살 수 있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음』(1데살5, 10)을 그는 믿기 때문이다.
※지상신학강좌 제2편「그리스도론」은 이번호로 끝을 맺습니다. 34회에 걸쳐 연재해주신 최영철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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