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도 다시 성탄을 맞게 되었다. 매해 맞는 성탄이지만 75년에 걸친 일생동안 성탄을 맞은 환경이 늘 갑지 않았으니 이번 기회에 잠시 회고해 본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을 모시고 자정미사에 참례했다. 그때 들었던「구유에 누워 계시니…진심창송할지어다…」로 시작된 성가는 영성체를 한 내 마음에 퍽 아름답게 남았고 아기예수와 가까이 있다는 기쁨을 느끼게 했다.
미사 후 춥고 어두운 길을 걸어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과 함께 따뜻한 떡국을 먹고 늦은 잠이 들 때까지 나는 삶에 만족했고 아기예수와 함께 있다는 느낌으로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성안토니오가 아기예수를 품에 안고 기쁨을 느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나 어린 나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복지국가인 스웨덴에서는 성탄절에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이 제일 많다는 얘기를 듣고 보면 내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보낸 성탄절은 참으로 귀중한 시절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부모님의 슬하를 떠나 독일에서 생활을 했을 때 역시 자정미사에 참례했으나 혼자서 쓸쓸한 밤을 지냈다. 산타클로스도 독일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려서 듣고 부르던 성가「구유에 누워계시니…」가 되풀이 들려왔기에 섭섭하지 않았다. 이때도 나는 혼자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예수와 같이 있다고 느꼈다.
그 후 스페인에서 전통 적인 아름다운 성탄성가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녹음된 레코드를 마련하지 못해 유감스럽다. 스페인에서는 성탄절이 삼왕내조첨례일(주의 공현대축일)보다 성대하지 못하고 크리스마스 나무도 없어서 좀 쓸쓸한 편이었다.
요사이 한국에서 성탄절 전후해서 구세군 냄비에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헌금하는 모습을 보고 구라파에 있을 당시 성탄과 비교해보면 한국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를 느끼게 된다.
미국에서는 내가 가정을 이루고 안정된 생활 속에서 성탄을 맞았기에 어려서 보낸 성탄절과 약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큰 형님인 장면씨가 주미 한국대사로「위싱톤」에 머물렀을 때 성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자정미사에 참례한 것이다. 성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전통에 따라 미사중 아기예수를 두 손으로 높이 받들고 성당 안을 도는 예식이 인상적이었다. 형님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성프란치스코회의「삼회원」(재속회원)이었으므로 제대에서 가까운 자리를 마련해줘 그 덕을 보았다. 이 수도원의 바깥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성모송을 세라믹판에 새겨 붙혔는데 옛날 한국말로도 적혀있었다.
딸이 자라면서 성탄을 맞는 집안의 분위기가 내 어린시절과는 달라졌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나무가 꼭 있어야하고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갖다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큰딸 네 살 반 되던 해 스페인에서 성탄을 지내게 되었는데 살던 집의 방으로 통하는 굴뚝이 없자 큰딸은 산타클로스가 자기를 찾아오지 못하겠다고 걱정을 해 여러가지 말로 위로하느라 애썼던 기억이 새롭다. 또 작은 딸은 친구로부터 산타클로스는 정말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그것이 사실이냐 물어 대답을 어렵게 하기도 했다.
한번은 TV에서 멕시코의 어느 성당에서 구유에 눕혀둔 아기예수상이 분실된 사건을 보았다. 도난을 당한 것이나 통상적인 도둑이 아닐 것이라 판단한 경관이 성당에 숨어 지켜보았다.
저녁이 되자 한 어린아이가 아기예수상을 들고와 다시 구유에 눕혀놓았다. 알고 보니 그 어린아이는 귀여운 아기예수를 꼭 자기 집에 모시고 싶어 가지고 갔었다고 했다.
그 아이를 체포하지 못함은 물론 책망도 못하고 아이를 내려다보는 경관의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성탄절에 미국에서는 헤어져사는 가족들이 다 모인다. 이와 관련 된 얘기로 멀리 떨어져 살단 한아들이 여러가지 위험과 고통ㆍ모험을 겪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자정미사를 알리는 교회종이 울리기전에 집에 도착해 가족들과 기뻐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기도 했다.
성탄이 정말 중요하고 기쁜 날임을 실감나게 했다.
겨울방학 때 미국에 들어가 11월 감사절 이후 방방곡곡에 울려퍼지는 성탄 성가를 들을 때면『이제는 크리스찬의 세계로 들어왔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성탄을 맞아 친척ㆍ친구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받고 또 축하인사를 보낸다. 참으로 누구에게나 즐겁고 좋은날이 성탄절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해 성탄이 점점 세속화 되어가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발가벗은 아기예수의 거룩한 탄생을 축하할 때는 마음가짐과 생활태도를 어린시절 순진하고 따뜻했던 신앙을 생각하며 영적인 성탄을 더 그리게 된다.
여러분! 성탄에 많은 은총을 받으시길 아기예수 앞에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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