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에서 한 시간 남짓 되는 거리, 톨롬보이에 다녀왔다. 마카오에 유학중이시던 김대건 신부께서 마카오미란이 있었던 1838년 8월과 아편전쟁이 있었던 1840년 5월에서 10월까지 피신하여 공부를 하셨던 톨롬보이. 그때 그 수도원 농장에는 지금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김대건 신부께서 참수 당하신 후에 그곳에 그리워 목없는 유령으로 떠도시는 것을 알고 현재 그 땅의 주인인 멘도사 여사가 땅을 기증하여 그곳에 동상을 세우게 했다고 한다.
톨롬보이에는 한국인 신자가 많이 찾아오는 때문인지 그곳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에게 매우 친절했다. 성당에 먼저 들렀는데 마침 수리 중인듯 어수선해서 잠시 공동기도를 드리고 나왔다. 성당을 끼고 있는 골목을 꺾어져 들어가는 곳에 멘도사 여사의 집과 그 옆으로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이 있었다. 마카오에 세워져있는 동상과 똑같은 모양이라고 한다.
누가 먼저 할 것도 없이 일행은 주모경을 바치기 시작했다. 일행 중의 누군가가 급기야 어깨를 들먹인다. 이역 땅에서 신앙을 위해 피신해 계셔야만 했던 김대건 신부, 참수 당한 후에는 목이 없는 유령으로 돌아다니셨다니 그 모습은 생각만 하여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521년 마젤란이 세계일주 탐험 중에 발견한 이래1898년 스페인ㆍ미국의 전쟁으로 인해 미국에 할양되기까지 3백80년 간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던 나라. 그래서 인구의 80%이상이 가톨릭신자인 나라.
한집 건너 하나가 성당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각 학교마다 성당이 있고 수요일이면 어느 성당이나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로 가득찬다는 마닐라.
마끄라란 대성당을 찾았다 마당 입구에 마리아상 대신에 이콘 그림으로 성모자상이 모셔져 있었다. 성당 입구에는 커다란 십자고상이 서 있고, 안쪽에는 어린예수님과 사도들의 상이 서 있다.
수요일이 아닌데도 성당에는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 않았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십자고상 앞에서부터 기도를 시작했는데, 놀라운것은 입구에서부터 무릎을 꿇고는 무릎걸음으로 제대 앞까지 기도를 바치며 가는 것이었다. 대개는 절실한 바람을 가지고 기도를 바친다는데, 그곳에서의 성취의 기적을 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가난한 국민, 그러나 한없이 낙천적이어서 데모마저도 즐기는 데모라고.
1986년 마르코스와 이멜다에 대한 반대데모를 할 때에도 그들은 묵주 하나씩을 손에 들고 다만 뒤에서 즐거이 쫓아다녔다고 한다. 총알이 쏟아질지도 모르는 거리 한 복판에서, 무방비상태로 말이다. 마르코스로부터 발포 명령을 받은 당시 군장성은 그 모습을 보고 차마 총탄을 퍼 부울 수 없어 전투기를 돌렸다고 한다. 결국 십자가를 앞세운 민중이 이긴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 비해 조금도 나아진게 없다는 필리핀. 거리는 여전히 지저분하고, 나라의 상권은 거의 중국인들이나 외국인들이 쥐고 있다. 필리핀이라는 독립국이기보다 차라리 미국의 한 주로 편입되기를 원한다는 그들. 혹여 남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도 고해성사를 반드시 한다는 그들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알지 못할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성 어거스틴 성당과 박물관도 찾아보았다.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건물인 성 어거스틴 성당은 1571년 건립 당시에는 대나무와 니파야자로 만들어졌던 것을 후에 석조로 개축한 것이라고 한다. 내부의 바로크풍 실내장식이 아름다운데 샹들리에와 스테인드글라스가 특히 뛰어나다. 우리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박물관 안에 오래된 성상들을 보고 감탄을 하기도 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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