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한낮이다. 선풍기 도는 소리가 을씨년스럽다. 매양 같은 테바퀴 맴돌기가 얼마나 지겨울까 싶다. 나는 2층 내 서재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창앞에 선다.
이런 때 내 앞에 바다가 보인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도회의 지붕을 너머 함포만이 누워있고 그 건너편에 산성산이 엎디어 있다. 바다와 산은 언제 보아도 정겹고 미더운 이름이다. 고층 건물의 벽과 벽으로 한정된 공간이기는 하나 바다는 지금 진무늬를 만들면서 싱싱한 물고기의 비늘처럼 일렁이고 있다. 그위에 몇척 배가 떠있는 정경이 참으로 화평스럽다 싶다. 지금 막 흰물살을 가르며 왼켠에서 들어서는 저 여객선은 어디로 향해서 가는 것일까?
바다 곁에 누운 저 검푸른 산의 거대한 몸짓은 또 무엇인가. 산등성이는 지금 용트림을 하면서 하늘쪽으로 올라서려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을 가까이로 달려내려 그 앞에서 주춤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엘리어트가 말했던가. 신성한 산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으로 세상의 중심에 위치한다고….
뭉게구름이 산을 딛고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뭉게구름은 하늘 가운데를 떠다니기보다 저렇게 산을 딛고 서기를 좋아하는걸까? 산을 접한 부분은 평평하고 위는 둥글어 크고 작은 솜덩이를 겹겹이 쌓아올린 것 같기도 하다. 어찌보면 거대한 흰 꽃봉오리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백광의 타오르는 불기둥같기도 하다. 백옥보다도 더 희고 양털보다 더 부드러운 저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동화속의 천사가 목욕하러 올때는 저 같은 뭉게구름 속에 몸을 숨겼다가 무지개가 서기를 기다려 땅 위로 내려서리라.
내가 뭉게구름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바로 창밑 한길에서 애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공을 차고있었나보다. 생각해보면 애들은 아까부터 공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내 시선이 애들의 떠드는 소리를 지나 바다와 산쪽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내귀가 이를 듣지못했을 뿐인지 모른다. 애들은 지금 무더위따윈 아랑곳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의 뒤를 쫓고 있다.
나는 문득 바다에 나서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남방 셔츠를 걸치고 차를 내린 곳은 가포유원지다. 이곳은 본디 해수욕장이였으나 십녀년전부터 수영이 금지돼있다. 바다가 오염의 허용 기준치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바다 가운데선 다이빙대의 낡은 몸채만이 지난날의 기억을 일깨워주고 있을뿐이다.
나는 바닷가 사장으로 내려섰다. 전같으면 벌거벗은 인어들로 가득찼을 그바다는 선유객을 실은 보우르들로 메워져 있었다. 바다는 산의 누운 자세에 따라 그 형상이 달라진다. 산성산과 갈마산 자락에 안긴 이 가포는 바다라기보다 차라리 커다란 하나의 호수 같은 곳이다. 호수처럼 잔잔하고 안온한 수면위에 수십척의 보우트가 떠 있는 정경은 그대로 한폭의 그림 같은 것이었다. 어느덧 나도 보우트를 타고 그 풍경속에 한부분이 되려한다. 보우트는 발로 패달을 밟는것보다는 손으로 젓는 것이 제격이다. 나는 보우트를 빌어타고
힘껏 물살을 가르면서 바다안으로 나선다.
위험표지의 붉은 깃발이 떠있는 곳 가까이까지 나가 가능한 한 큰원을 그리면서 의각을 돈다. 몇바퀴나 돌았을까? 수면위로 치솟는 물고기의 재주들도 시원하다 싶었고, 아는 이와 마주치면 손을 흔들어 보이는것도 정겨운 일이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밎히고 등살에 땀이 흘러내린다 싶어 시계를 보니 벌써 정해진 시간이 다된 것 같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 말뜻 그대로 더위는 피할 것이 아니라 맞부딪칠 일이다. 이대로 곧장 목욕탕에 가서 한층탕에 들어 흠씬 땀을 빼고 또 냉탕에 들어 찬물에 몸을 식혀야지-이런 생각을 하니 한여름 해거름이 한결 시원해진다.
되돌아오는 길에 차창으로 뵈는 바다와 산이 여느때보다 더 정답고 미덥게 느껴진다.
▲文協 馬山支部長이던 73년에 조연현선생 추천으로 文協會員이 됨.
▲ 文學博士, 慶南大敎授, 韓國隨筆家協會理事.
▲慶南大師大學長등 역임
▲著書: 「옛생각 이제생각」등 수필집 2권과「現代詩와 님의 硏究」등 이론서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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