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필자가 늘 경상도교회의 선교과정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중에 마침 얼마전에 순교자 김범우(金範禹 ㆍ 토마스) 가정의 6대후손인 김만돌(金萬乭 ㆍ 東煥) 씨를 만났고 또한 그분을 통해서 1762년에 간행한 경주김씨(慶州金氏) 의 족보(族譜) 와 1897년 (건양2년) 에 발행한 족보 및 김범우의 손자 김동엽의 호구단자(戶口單子 ㆍ 密陽府 발행) 7통과 편지 12통을 입수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막연하게 우리교회의 첫순교자인 김범우가 1785년 봄 명례방(明禮坊) 교회 집회중에 발생한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에 의해 귀양가서 순교한 곳이 충북 단양(丹陽) 이 아닌 경남 밀양의 단장(丹場)일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교회의 문헌들과 나라의 형조(刑曹) 의 기록에 당양(當陽)으로 기록되어있으므로 쉽게 말이 수긍이 가지않았다. 물론 현재도 아직 그분의 귀양지가 밀양의 단장(丹場)이라는 확실한 물적인 증거인 묘소를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어떻게 단안을 내릴 수가 없다. 또한 더구나 이분의 순교지(殉敎地)에 대해서 우리교회의 사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하므로 더욱 어려운 문제라 하겠다.
그러므로 필자가 여기서의 순교지(殉敎地)에 대한 확실한 해결을 보자는 것보다 오히려 우리 교회창립 초기에 보여 주었던 그분의 진실되고 열렬했던 신앙생활의 모범과 또한 훌륭한 순교정신을 우리 모두가 본받자는데 있다. 그리고 또한 물론 우리교회의 기록은 다르지만 족보상의 기록으로는 1987년 금년 9월 14일 (음7월 16일) 이 그분이 순교한지 꼭 2백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제 이 뜻깊은 해를 맞이해서 초창기 우리교회에 공헌한 그분 가정의 업적과 신앙을 재조명 해봄과 동시에 현재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던 그분 후손들의 연연한 삶도 알리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데 우선 그분과 그분 형제들의 인적(人跡) 기록에 대해서 우리 교회의 문헌(文獻)들과 나라의 형조 (刑曹)의 기록, 그리고 경주김씨(慶州金氏) 충선공파(忠宣公派)에서 나타난 기록과의 차이점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우리 교회와 형조의 기록에는 김범우 그분의 형제가 8형제이며 또한 순교한 사람은 8형제중에 맏이인 김범우와 동생 김이우(金履禹 ㆍ 마태오) 3사람이라고 기록했다. 그뿐아니라 김범우가 귀양가서 순교한 곳은 단양이며 순교날짜는 그분이 귀양가서 몇개월후일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족보에 나타난 기록을 보면 1762년에 간행된 족보의 기록에는 김범우의 형제가 8형제가 아닌 7남매로 기록되어 있다. 즉 범우(範禹) 형우(亨禹), 관우(觀禹) 적우(積禹), 여(女) 서녀(庶女)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 그후 1897년 (건양2년) 에 발행된 족보에는 그분의 형제가 8남매로 기록되어 있다. 즉 범우, 형우, 관우, 적우, 여봉동(女奉洞) 서자 이우(履禹) 서자 순우(順禹), 서녀 박진화(朴鎭華)로 기록되어있다. 위의 두 족보를 대조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은 앞의 족보에서 7남매 중에 서녀 한 사람이 뒤의 족보에서 빠진 것으로 보아 아마 혼인 전에 사망했으므로 자연히 족보에서 빠진 것이 아닌가 (?) 생각된다. 그리고 또한 앞의 족보에서 없는 서자 이우와 서자 순우는 앞의 족보가 간행된 1762년 이후에 출생한 것이 아닌가 (?) 생각된다.
그런데 마침 교회의 기록에 따르면 서자 이우와 서자 순우(현우 ㆍ 顯禹 ㆍ 마태오)가 맏형을 따라 천주교를 믿어서 1801년 (신유박해) 에 순교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김범우가 감옥에서 매를 맞고 귀양가서 장하치명(杖下致命) 으로 순교한 날짜는 2년후인 1787년 양력 9월 14일 (음력 7월 16일) 로 되어 있다. 또한 그외 앞서 말한바와 같이 그분이 귀양가서 순교한 곳은 그의 손자인 김동엽(金東曄)의 호구단자(戶口單子)와 편지들을 참조해서 생각해보면 밀양 단당(丹場)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은 변기영 신부님과 후손 김만돌(金萬乭, 東煥, 토마스) 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김범우가 귀양갔을때 함께 가족들도 따라가서 살았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김만돌─동환─씨는선조의 묘를 찾기 위해서 7년동안 옛 선조들의 묘소가 있었던 양주신헐리(楊州神穴里) ㆍ 현재 서울시 불광동) 와 또한 그 묘소들을 도시계획 때문에 이장한 현재의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광암리 선산에 가서 조사했으나 선조 김범우의 묘소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 이분의 손자 김동엽의 첫째부인 파평윤씨 (坡平尹氏) 의 묘소가 위의 양주 신헐리 (현재는 광주군 퇴촌면 광남리로 이장) 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부연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곳 경남 밀양군 단장면(丹場面) 은 태백산맥의 최남단에 속하는 처왕산(1189m)과 만어산(670m) 등이 둘러쌓인 큰 산악지대로, 고려말엽에 이성계의 개국을 반대해서 귀양와서, 혹은 피신와서 이지방을 처음으로 개척했다는 의령남씨(宜寧南氏) 들이 많이 살고있는 것을 보면 이 지방이 옛날 이조시대때의 귀양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김범우도 이곳에 귀양와서 순교했을 가능성이 한층더 있다. 다음에는 좀더 깊이 이 문제들을 살펴보고 또한 그분 형제들의 신앙생활과 후손들의 생활 및 그분이 우리 교회에 공헌한 참 순교 정신에 대해서 말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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