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을 사랑한다. 특히 사제가 되고나서 부터는 더욱 그렇다. 젊은 사제에게 여름은 온몸으로 사목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보통때 본당에서 쉽사리 하지 못했던 육회적(?) 사목을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는 시기이며 몇 달을 지냈어도 친근감을 주지못했던 청소년들을 단 며칠만에 친구로 만들 수 있는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나는 이 여름을 젊음과 하나되어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여겨왔다. 그래서 매년 여름은 나에게 참으로 바쁘고 요란 스럽고 신나는 추억들로 가득채워져 있는 것이다.
누가 여름을 무덥고 지루하다 했는가? 여기서는 독자들에게 어느해 여름의 나의 짜릿한 체험들을 소개하면서 태풍과 폭우로 한맺힌 여름을 잊기로 해보자.
한 여름밤의 꿈
유난히도 뇌성벽력과 폭우가 심했던 그해 여름, 지리한 장마 틈틈이 해를 보여 주어 우리 아이들을 기쁘게 했던 그해 여름에도 나는 태양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비 사이 사이로 많은 행사들을 무사히 치루어 내었다. 물론 중 ㆍ 고등 학생 캠프 마지막 날 밤 캠프 화이어를 시작한지 30여분쯤 지났
을까. 분위기가 고조되어 갈 즈음에 갑자기 천둥 번개와 함께 쏟아진 비는 예외로 하고 말이다.
중 ㆍ 고등부 캠프 마지막날 파견미사 때. 짐챙기고 떠나려는 우리에게 심술을 부리려는 듯 유난히도 뜨거운 햇볕 때문에 천막속에 들어가서 미사를 드렷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으로 쏟아지는 비는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 빗소리에 경무외는 소리가 들리자 않을 지경이었으니까.그러나 무슨 약이라도 먹은듯 기운차게 하느님을 찬양하는 우리 아이들의 노래소리에 맞추어 주는 반주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미사드리다 말고 즉흥으로 부른 노래는「큰비 소리도, 천둥 번개도 우리들의 벗이 되다네」라는 것이었다. 그 빗속에서 야훼 이르에를 힘차게 불러대던 우리 아이들의 얼굴과 얼굴에는 하느님의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울먹이며 평화의 인사를 하는 아이들, 평소에는 부끄러워서, 어려워서 가까이 오지도 못하던 아이들은 내 가슴에 거침없이 안기는 모습들…그해 여름은 그렇게 뜨거웠다.
설악산-그 신앙의 그룹 다이나믹스
산을 오른다는 것은 하느님을 향한 신앙의 여정과도 흡사하다. 더욱이나 웬만한 사람에겐 힘든 코스인 대청봉을 넘는 산행은 자기와의 싸움과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나는 그래서 종종 젊은이들을 데리고 대청봉 산행을 감행한다. 나에게도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그해 여름에도 젊은이들 30여명을 이끌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백담산장에 도착한 첫날밤 그리넓지 않은 방에 빽빽이 둘러앉아 미사를 봉헌하면서 나는 이렇게 강론하였다.
『이 산행에서 내가 편하고자 하면 공동체가 짜증스럽고 짐스러울 것이며, 그것은 바벨탑의 분열처럼 우리의 마음을 갈라놓아 모두를 힘들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 자신과 싸우며 우리가 평소에 쉽게 말해왔던 사랑 ㆍ 희생등을 구체적인 한계상황 속에서 얼마나 실천에 옮길 수 있는지를 스스로 가늠해보는 기회가 되도록 합시다』다음날 새별부터 쏟아지는 빗속을 강행군하였다. 오를수록 계곡의 물이 넘치고 그 속도는 가히 위험수위를 뭇돌고 있었다. 수럽동 계곡을 얼마쯤 지났을까. 물살이 너무 세어서 우리는 밧줄로 매고 거기에 의지하여 허리까지 차는 물을 건너야 했다. 3분의 2가량이 산을 다녀본 적이 없는 여학생들이라 용기를 주기위해 괜찮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그대 서늘했던 가슴은 나 아니고는 아무도 몰랐으리라. 희운각으로 하산하는 도중 계곡에서 길을 잃어 당황했을 때 우리들은 모두 지쳐있었고 빗속에 어둠이 내리덮고 있을 때였다.
1시간이상을 내려온 길을 거슬러 다시 봉정암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나서 아이들을 모아 두려워하지 말고 힘을 내자고하며 함께 그 경황에서 바쳤던 주의기도, 성모송, 영광송…그리고 나서 30여명의 아이들은 그 지친 몸으로 빗속의 어두운 산길을 한사람도 사고없이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 밤 감사의 미사를 드리자고 해놓고 내가 제일 먼저 곯아 떨어져 잘만큼 피곤했었으니 제힘만 가지고는 불가능 했으리라.
그 다음날 우리는 희운각에서 더 이상 내려 갈수 없는 상태(계곡이 넘쳐 이미 통제된 상태)에서 피신한 수많은 등산객들과 함께 초조하게 하루를 머물러야 했다. 그날 밤 그좁은 공간에 모여앉아 부르던 노래, 바치던 기도, 나누던 성체는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진지하고 거룩한 미사를 드려본 적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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