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사회에서 실학(實學)과 서학(西學)은 전통적 성리학(性理學)풍토에 변화를 촉구하는 학문성향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실학은 결과적으로 근대라는 시대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경세치용(經世致用)ㆍ 이용후생(利用厚生)ㆍ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목적으로 제도개혁ㆍ산업진흥을 위한 학문이었고 또 실학자들에 의해 한국학(韓國學)의 성과를 다각적으로 거두었기에 귀한 문화유산을 후세에 남겼다.
한편 서학은 비록「기」(器)의 측면인 과학ㆍ기술은 수용되지 못하였으나 이(理)의 측면인 종교ㆍ윤리는 천주교라는 신앙생활을 통해 조선하구 사회에 수용되어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다음에서 실학과 서학의 학문성향을 요약하고 천주신앙의 수용ㆍ실천이 내포하는 역사적 의의를 규정해 보고자한다.
1.조선실학
조선왕조는 성리학적 지배원리의 모순으로 16세기 중엽부터 이미 농촌사회가 피폐하기 시작했고 국가재정도 부실해지는등 여러모로 노쇠현상을 빚어내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농촌참상을 직접 체험할수 있었거나 도시환경을 키울수있었던 지식인들은 「허화」(虛化)된 성리학에 대하여 「實」의학을 지향하는 새로운 학문을 추구하게 되었다.
실학의 경세치용파가 대체로 농촌생활의 경험을 가진 남인(南人)들이 주도하였는데 반해 이용후생파는 도시분위기 속에서 성장하고 대륙에 사신으로 왕래한바 있는 노론과 소론파로 주도되었다. 18세기 전반에서 19세기 전반까지의 1백50년간의 실학활동으로, 여러가지로 주목할만한 방법이 제시되었고 학문성과가 쌓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타개의 진보적 학문탐구였지 현실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말있다. 이점에서 실학의 근대적ㆍ민족적 지향성은 높이 평가되나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지못한 학문활동이었다고 규정지어지고 있다.
2,조선서학
17세기이래 예수회에 의해 저술된 한역서학서나 서양문물은 정치적 봉건사회이던, 조선으로 계속 흘러들었다.
이러한 서구문화적 자료에 대한 일부 지식인들의 학문적 연구를 조선서학이라 한다.
서학연구자들은 한문으로 번역된 세계지리서와 지도를 통해 근대적 세계관에 접근하면서 서서히 화이론적(華夷論的)인 전통적 세계관에 회의를 품게되었고 역외춘추(域外春秋)의 의식을 갖게되었다. 또한 서양문물과 한역서학서를 통해 서구과학기술의 우수성을 인식하게되고, 나아가 서양의 합리적 실용과학기술의 도입을 주장하면서 개방정책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조선서학자 가운데는 천주신앙을 이해하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그리스도의 삶과 인간성을 추구하는 사람도 나오게 되었다.
새로운 종교의 수용은 동시에 그 신앙에 내포되어있는 가치의식의 수용이며 새로운 인간으로서의 변신을 위한 노력인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적 가치관ㆍ인간관의 실천이기에, 천주신앙의 수용은 「정신적 實」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
학문으로 끝난 실학과달리 조선사회에 생동성있게 작용한 것이 서학이었던 것이다.
3,서교(西敎)수용의 실학적 의의
실학은 서학보다 앞서 조선후기 사회에 자생한 실「實」의 학(學)의 추구였다. 그것은 강렬한 현실의식에 건전한 학문활도 있었으나 결국은 유교적 질서의 재확립과 민생안정을 지향하며, 민족문화를 창달하기 위한 학문이었다. 실학은 유학적 토양에서 자생하고 이에 패익(稗益)하고자 한 학문활동이었다.
한편 실학의 출발보다 시간적으로 뒤지나, 실학의식을 가지고 조선후기 지성의 외래의 서구적 문화충격에 대응하는 학문활동이 조선서학이었다. 서학하는 사람들도 유학 지식인이었고 그 학문기반도 유학인이었다. 서학은 실학에서의 파생적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실학에 포함시킬수도 있는 학문활동이다.
실학은 제도개변, 산업진흥의 방법론 및 국학연구 즉 「사물(事物)의 실(實)」의 학으로 조선후기에 기여했다. 이에 대해 서학의 서교 즉 그리스도교 신앙은 조선후기에 변화를 촉구하는 한 인자의 등장이었다. 이런점에서 천주교 신앙의 봉행은 단순히 또 하나의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 실」과 「사회적 변성(變成)」의 가치체계 수용의 역사였던 것이다.
실학이 「사물의 실」을 추구하였다면 서학을 통한 천주교신앙의 봉행은 「정신의 실」의 추구였던 것이다.
결어
사상과 문화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성 발전하는 것이다. 이 발전은 전통사상ㆍ전통문화에 바탕하는 내재적 요인과 민족의 진취적 예지로 수용되는 이질사상ㆍ이질문화와의 상호작용에 의한 재창조를 통해 진정된다. 조선서학의 학문활동은 조선후기 사회의 유학적교양인에 의한 이질문화체계의 검토와 추구였고, 그에 따라 천주교 신앙의 자율적 이해와 진취적 봉행을 결과하였다. 이들 유교적 교양인의 행위는 변절이나 경거가 아니라 자신의 학문적 노력과 사상적 교민의 역정을 거쳐 변성을 추구받게 된 역사적 실천의 모습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물론 천주교는 보편가치추구의 종교이고, 실적질서의 완성을 목적하는 종교이어서 그 자체를 근대적인 개별가치추구ㆍ인간적질서의 추구를 지향하는 근대적성격의 가치체계의 성격을 벗어난 것이라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후기 사회에서의 천주신앙의 수요잉 모순된 통치현상과 현실기여의 능력을 상실한 종교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生의 이념과 종교의 수용이었으며, 그것이 실학정신을 지닌 선각적 유교지식인의 자율적학습과 경건한 구도에 의한 「정신적 실」의 추구였기에 근대적 접근과 민족사적 의의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일부 교인들의 양박청래(洋舶請來), 무력개교(武力開敎)나 외세접근(外勢接近)의 구상과 노력은 개인에 의한 바람직스럽지 못한 행위였지, 서학이나 천주교의 본질에 연유되는 문제는 아니다. 본래적 본질과 파생적 춘사(椿事)를 가려볼 수 있는 역사적 안목에서만 조선실학과 조선서학의 연관관계와 천주교수용의 민족사적 의미가 바르게 인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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