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사회나 시대에서는 신흥종교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격변기나 혼란기에 발생한다. 그렇기때문에 신흥종교는 사회불안의 산물이고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민중의 몸보림이기도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신흥종교의 발생 그 자체는 사회병리현상이라기보다는 사회병리현상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 기록들을 보면 위기상황이 조성되거나 민중이 도탄에 빠지게될 경우에는 언제나 민중종교운동이 발생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통일신라말기의 정치적 격변기에 성행하였던 미륵불출세신앙은 사회적 혼란으로부터 민중을 구제한 메시아적 왕의 대립을 갈망하는 민중의 바람에 힘입은 것이었으며 후백제를 건국하였던 견훤이나 후고구려를 세웠던 궁예가 자신을 미륵불이라고 자처하였던 것은 이러한 민중의 열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코자 한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그후에도 정치적 또는 경제적 혼란이 일어날때마다 발생되곤하였다. 고려말에 성행하였던 풍수도참사상, 조선후기에 전국적으로 퍼져있었던 미륵불출세신앙과 각종의 비결사상(秘訣思想), 그리고 이러한 것에 토대하였던 민중종교운동 등은 불안과 고통으로 벗어나려는 민중운동의 한 형태였던 것이다.
초기의 한국가톨릭도 어떤점에서는 이와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극심한 박해속에서도 가톨릭신앙이 민중세계에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가톨릭의 교리와 사상을 사회복음(社會福音ㆍSocial Gospel) 내지는 혁명적인 이념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신앙과 순교를 통해 봉건사회 질서에 저항하고 있었으며,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신앙운동은 비록 신흥종교운동과는 다르다고 하더라도, 민중종교운동의 성격을 다분히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 한국신흥종교운동의 효시는 동학이라고 할 수 있다. 1860년에 발생한 동학은 한국 신흥종교운동의 전형적인 모형이었고, 그 후에 나타난 수많은 신흥종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민중종교운동이었다.
동학은 그 명칭에서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서학 즉 가톨릭에 대응한 종교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가톨릭이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면서도 끊임없이 민중세계에 확산되는 것에 위협을 느끼고 그에 대항하기 위해 발생한 것이었다. 또한 이 운동은 봉건사회체제의 해체과정과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었던 민중이 자신들의 삶을 모색하기 위해 전개한 것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운동의 사상속에는 반외세(反外勢)ㆍ반봉건(反封建)의 이념이 깊게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동학은 민중의식의 계발과 근대민중운동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학혁명이라고도 불리우는 갑오(甲午)농민전쟁은 오늘날 동학이념의 표출이었기 보다도 동학이라는 종교적 외피(外皮)를 입은 것에 불과하였고 그것을 주도한 전봉준도 실제로는 동학신도가 아니었다는 주장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 혁명에 끼친 동학의 영향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동학은 그후 천도교로 개명된 이후 3ㆍ1독립만세를 주도하는 등 한국근세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동학의 발생이후, 특히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외세침략을 받으면서부터는 수많은 신흥교들이 발생하였다. 남학ㆍ영가무도교(영歌舞蹈敎) ㆍ증산교ㆍ대종교 등은 이 시기에 발생하였던 대표적인 종교들이었다. 이 종교들의 상당수는 동학에 참여하였던 자들이 다시 전개한 것이기도 하였다.
한국 신흥종교의 급격한 증가는 일제시대에 나타났다. 이 시기에는 과거의 신흥종교들이 분파되는 한편, 새로운 형태의 신흥종교들이 발생함으로써 그 수효가 수백개에 달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한국신흥종교의 계보는 이 당시의 종교운동들에서 유래된다. 그러나 백백교를 비롯한 사교(邪敎)들이 나타내는 살인ㆍ강간ㆍ재물수탈 등의 사회적인 문제들과, 민족자주의식을 강조하는 건전한 신흥종교들의 사상으로 인해 1938년 조선충독부는 「유사종교해산령」을 내렸으며, 그 결과 대부분의 신흥종교들은 지하로 잠복하거나 해체되고 말았다.
8ㆍ15광복이후, 한국의 신흥종교는 또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되기 시작하였다. 과거 지하에 잠복했던 신흥종교들은 교리와 교단조직을 재편성하면서 다시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으며, 6ㆍ25와 4ㆍ19,그리고 급속한 경제개발정책과 도시화과정을 거치면서는 그 계보와 소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신흥종교들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6ㆍ25이후에는 그리스도교 계통의 신흥종교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은 신앙심과 교리지식이 부족한 기성교회의 하류층들을 대상으로 그 교세를 넓히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이 때부터는 외래 신흥종교들이 몰려 들어옴으로써 한국종교계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아직 대부분의 신흥종교들은 영세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기성종교의 교세에 눌려 고전한다. 그러나 신자증가율을 분석해보면 이들의 교세신장율은 오히려 기성종교의 그것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들중에는 거대한 종교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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