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문제의 중요성은 그동안 교회안팎에서 다각적으로 인식되어 왔고, 이 문제의 해결은 가정과 학교, 사회가 공동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도 깊이 느끼고 있다. 본보는 현재 보라매 청소년 회관 상담실장으로 재직하고있는 정은씨의 청소년 상담사례를 연재, 청소년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본다.
『엄마, 지금도 고아가 있어』이게 원뚱딴지같은 질문이란 말인가. 다섯살짜리 고마의 물음에 엄마는 우리 애기 벌써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걸까. 어느새 의젓하게 자랐단 말인가. 열심히 현상적인 설명을 하지만 얼마전 세상 떠난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엄마 아빠도 사라지는게 아닐까. 불안할 뿐인 꼬마의 표정은 지루하기만 하다.
죽음의 trauma, 어린시절 강렬하게 받은 자극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무의식의 세계로 내면화되어 「어른되기 싫다」,「죽임이 두렵다」는 생각이 스치곤했지만 나를 지켜주고 든든한 울타리안에서 언제까지나 보호해주리라 믿었던 아버지가 덜컥 세상을 떠났다.
고3이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토끼몰이 당하는 절박함으로 전쟁과도 같은 시험을 치루고 일류대학에 합격이 되었다. 이제부터 마음껏 슬픔과 그리움에 빠져 들어가도 좋았는데 두려움의 늪에서 헤쳐나올 힘이 없다. 그 누구라서 이 고통을 나누어 주랴. 『선생님, 죽고만 싶습니다. 어머니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것같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저도 쓰러질것 같은데 제가 받쳐드려야 하니 그 무게에 짓눌려서 숨이 막힙니다. 호흡이 정지하는것 같아요』준비없이 쓰러지면 얼마나 추할까 싶어 죽음을 선택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번의 좌절경험도 없었던 P에게 아버지를 잃은 상실의 아픔은 어머니의 고통까지 짊어져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겹쳐 대학신입생으로서의 생동감, 활발함으로부터 멀어져가게 했다. 대학가의 데모열풍에도 감각이 없었다. 활달한 성격으로 누구와도 잘 어울렸던 P의 변화를 친구들도 의아해했다. 아무도 이해해주는 이 없었고 남자된 체면에 실컷 울 수도 없었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애정과 증오와 같은 양극적 감정이 얽혀있는 사랑과 의존의 대상으로부터 상실의 위협을 받게 되거나 자절의 경험을 하게될 경우, 이에 대한 분노가 내재화되어 자기 자신을 향함으로써 자실행동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P의 경우 자신의 괴로움을 상담자에게 호소함으로써 주관적인 고통이나 분노, 실망, 절망상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한 것은 다행이었다. 현재의 괴로움 때문에 죽고싶은 심정을 공감해주고 우선 고통, 괴로움의 내용을 차분히 정리하여 좀더 여유있는 마음을 가지도록 만남이 시작되었다. 열린 마음의 문을 통하여 새로운 빛을 받으며 걸어가게된 P는 자연스럽게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톨릭 안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되찾게된 P는, 아마 신부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아버지를 보았던 것 같다.
긴장된 현실에서도 우리들의 생명은 성숙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신을 송두리째 맡겨야하는 시회 흐름속에서 절망적은 상상 한번 해보지 않고 청소년기를 넘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소아기의 충격이 없더라도 시험지옥의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죽음에 의해 구원받아 만족스러운 환경에 다시 태어나고 싶은 재탄생(rebirth)에의 공상에 빠져들어가는 청소년들을 의외로 많이 만나게 된다. 그 여린 싹들에게 엉뚱한 판단을 하기에 앞서 완전한 인간성의 실현을 항햐여 정서적으로 성숙한 성인이 되도록 돕는 책임을 우리 모두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하는 바램이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희망-그것은 언제나 함께 있는 것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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