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이름이 거룩히 빛나소서. 』 주의 기도의 첫머리 기도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사목적 업적을 이루는 목적으로 제시해주신 기도였다.
그것은 당신의 구세사업의 목표이기도 하였다. 첫 안식일에 구세사업의 첫발을 내딛은 하루는 인간적으로 화려하고 신나는 하루였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의 이름이 알려지고 문밖에 몰려와서 「예수, 예수」를 불러댔을 때 자칫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소서』 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내 이름이 찬란히 빛나소서』 에 빠져들기 쉽다.
예수님은 이런 때에 기도를 하셨다.
기도는 이 인간적인 유혹을 물리치는 힘이었고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수단이었다. 기도는 예수님께 있어서 거룩한 일을 하는 올바른 지향이 용솟음치는 샘이었고 양식을 공급하는 창고였다.
구세사업의 사명을 받던 세례식 때에 예수께서는 기도로 시작하시며(루가 3, 21) 세례자 요한의 요배를 물리치셨고, 40일 피정에 들어가 사탄이 아부할 때 기도와 단식으로 이를 물리쳤으며 어제 안식일의 사목활동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며 사람들의 열렬한 칭송과 환대를 받고나서 예수께서는 호젓한 곳으로 물러가서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 간밤에 피곤했던 몸을 좀 쉬시고 새벽해가 뜨기도 전에 아무도 몰래 일어나 집을 몰래 빠져나왔다.
호젓한 자연 속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 드리려는 것이었다. 어제 하루의 전도사업이 좋은 출발을 하게 된 것을 감사드리려는 것이었다. 그는 「성령 안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을 어찌할 수가 없어서」(루가10, 21) 기도드리는 것이었다. 이럴 때마다 예수께서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 복음사가들은 그 모형을 소개하고 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감사합니다』(마태11, 25:루가10, 21). 이 기도는 사도들이 전교에 성과를 거두었을 때 올린 기도였고, 그후 교회는 수도원에서, 신학교에서, 성당에서 새벽기도와 아침기도를 이런 뜻에서 바치기를 2천년동안 계속하여왔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은 또다시 모여들었다. 그리고 예수를 찾았다. 예수를 사람들에게 찾아다주는 역할을 맡기라도 했듯이 베드로는 동료들과 함께 예수를 찾아 나섰다.
예수를 만난 익명의 군중은 제발 자기들과 늘 같이 있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아직 신앙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이 「예수와 같이 있음」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이별할 때에 약속하는 대목이 될 것이고 예수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초대교회부터 오늘까지 모든 그리스도신자 공동체의 친교의 분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육신으로 함께 몇몇 사람들과만 지낼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다른 동네로 가자. 거기서도 전교해야 한다. 나는 이 때문에 나온 것이다』라고. 갈릴래아 바닷가에 옹기종기 붙어사는 집들을 멀리 손으로 가리켰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실 때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사명과 소명을 되새기셨고 제자들은 초대교회를 이끌어가면서 이 말씀을 되새기고 자기들이 바다건너 국경을 넘어 무한히 펼쳐진 사람 사는 동네 즉 온 세상을 내다보았다. 그래서 루가는 이 말씀의 뜻을 밝히어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다른 여러 동네에도 가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바로 이 일 때문에 나는 파견되었습니다』라고.
과연 예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셨다. 여기서 유다지방이라고 한 것은 갈릴래아에서 유다지방으로 가셨다는 말이 아니고 유다라는 말로 유대아인들이 사는 팔레스티나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루가는 유다라는 말로 예수께서 발 닿는 온 세상 즉 유대아인들의 천하라는 뜻으로 쓰고 있다.「헤로데가 유다의 왕이었을 때」 의 유다는 팔레스티나 전체를 가리켰고(루가1, 5), 『예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근방에 두루 퍼졌다』(루가7, 17) 라고 할 때, 유대아인들이 예수를 고발하면서 『이 사람은 갈릴래아에서 이곳에 이르기까지 온 유다 땅을 돌며 백성들을 가르치고 …』(루가23, 5) 라고 했을 때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백성들에게 설교하면서 『이것은 …갈릴래아에서 비롯하여 온 유다지방에 걸쳐서 일어났던…예수에 관한 일입니다』(사도10, 37~38) 라고 전했을 때, 사도 바오로의 설교에서 『유다 온 지방 사람들에게, 나아가서는 이방인들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서 회개한 증거를 보이라고 가르쳤습니다』라고 했을 때 유다라는 말로 루가는 언제나 유다인들의 세계를 가리켰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은 어느 한정된 한 곳에만 전해질 것이 아니고 온 세상 어디에나 전해져야 한다는 사명감을 사도들은 자각하고 있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