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성서에서 계시된 교회상을 보고 또 역사에 나타난 교회의 자아의식을 보았다. 이제 우리는 교의신학적으로 성서의 교회상과 역사의 교회의식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논리적 순서에 따라 교회의 본성, 교회의 구조, 교회의 사명, 교회의 기능 순서로 서술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니 무엇보다 먼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밝혀야 한다.
그리스도의 신비
인류의 구세주로 성부께로부터 파견되신 성자는 우리와 꼭 같은 인간성을 취하여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어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비교적 짧은 생애 중에 인간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계시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상에 죽으시는 자기희생으로 인간의 죄를 보속하시어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이룩하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인간의 영원한 구원사업을 성취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실현하신 구원의 은총에 우리인간들이 참여함으로써 각자의 구원이 달성되는데, 이렇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이 사람들에게 분여(分與) 되고 사람들이 이 은총을 신앙으로 수락하는 과정 안에서 교회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은총의 수여와 수락을 합하여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親交) 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의 본성은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의 신비라 한다.
그리스도의 머리
이러한 친교의 신비를 성서가 표현하기를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다』(골로1, 18) 하였다. 트렌토공의회는 『그리스도 자신이 당신의 능력을 의화(義化) 된 자에게 계속하여 주시기를 머리에서 몸에 주심같이 하신다』 하였고, 교회헌장은 『성자는 당신의 성령을 주심으로써 모든 백성들 중에서 불러 모으신 당신 형제들을 당신의 몸으로 신비스럽게 구성하셨다』(교회헌장7)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가 그의 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간성이 받으시고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위대한 은총이 있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은 이 은총을 영수(領首) 은총이라 한다.
그리스도는 이 은총을 강생의 순간에서부터 가지고 있었으며(루가1, 32:2, 40) 빠스카의 제헌을 통하여 그 은총을 우리에게 분여하심으로써(사도20, 28) 새로운 백성을 획득하셨으니, 최후만찬에서 성부께 간절히 기도한 그대로 그리스도께 주어진 은총과 영광이 그의 제자인 우리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영수은총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생활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에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인간성 안에는 하느님의 완전한 신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완전에 이르게 됩니다』(골로2, 9).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성에까지 참여하게 하는 이 은총은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신 것이지만 우리는 자유로운 신앙의 결단으로 이 은총을 수용하여야 한다. 그래서 다같이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이면서도 사람에 따라서 이 은총에 참여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 신앙만으로 참여한 사람보다 신앙과 사랑으로 참여한 사람이 더욱 밀접한 지체가 된다.
교회헌장은 머리와 몸의 일치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그의 생명의 모든 신비에 흡수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은 모상이 되고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함께 다스리기 위함이다.
지상에 순례하는 우리는 환난과 박해 중에 그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머리에 연결된 지체로서 그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하여 그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
(교회헌장7).
신비체의 지체
이러한 머리와 몸의 일치는 물리적 일치가 아니다. 신자 개개인의 인격이 그리스도의 인격에 흡수되어 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신비체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인격과 지체들의 인격은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법인체와 같은 윤리적 일치도 아니다. 법인체의 구성원들은 공동목표를 추구하여 활동할 따름이지 생활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신비체의 지체들은 구원이라는 목표가 같은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생활을 공유한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일치는 전통적으로 「신비적」 이라는 표현으로 지칭한다. 그리스도와 신자들은 개개의 인격체로 있으면서도 하나의 영신적 생명에 참여하여 개체는 여럿이지만 생명은 하나이라는 그야말로 신비스러운 일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신다』(갈라2, 20) 하였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은 가장 적절하게 그리스도와 그 신자들의 긴밀한 일치를 표현하기 때문에 바울로 사도의 교회관의 대표적 이미지가 되었지만 이 개념만으로 교회의 실재(實在)를 남김없이 표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몸은 머리와 지체가 생래적(生來的)으로 하나이지만, 신비체는 머리의 부르심에 대하여 지체가 신앙적 선택으로 결합한 몸이니 비생태적 초자연적 결합이다.
그리고 몸이라는 개념만으로는 교회 안에 죄인과 냉담자가 어떻게 성인들과 함께 포함되어 있을 수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개념이 동원되어야 가능하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야훼의 배필이라고 묘사하듯이 신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배필이라고 여러 번 묘사하고 있다. 이런 표현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구별을 잘 나타낸다. 부부가 한 가정을 이루지만 남편과 부인의 인격이 다른 것처럼 그리스도 자신과 교회는 별개의 인격이다.
그리스도의 배필
또 배필의 개념은 은총의 무상성(無償性) 을 잘 설명한다. 머리가 몸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배필은 서로 선택하듯이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우리도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로 선택하였으며, 부부가 끊임없는 노력으로 남녀의 일치를 유지하듯이 교회도 끊임없는 회개와 정화의 노력으로 그리스도와 일치하니 배필이라는 표현이 이 방면에는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또 배필은 자녀들에게는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는 신자들에게 은총을 전해주는 어머니 역할을 한다. 그래서 교부시대부터 신자들은 우리 교회를 「자모이신 성교회」 라고 불러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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