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까지『나는 믿나이다』라는 말이『크리스찬으로서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신경의 첫구절『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또는 더 완전하게『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창조주를 믿나이다…』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사도 신경에서 맨먼저 나오는 기본적 신앙진리입니다. 그것은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과 거의 같습니다. 『나는 믿나이다. 한분의 전능하신 하느님아버지…창조주를…』그래서 우리교리의 주제는 이제부터 하느님, 즉 우리신앙의 하느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은계시에 대한 응답이니까 이제부터 우리 교리에서 다룰 주제는 인간에게 자신을 알려주신 하느님 즉 인간에게『하느님은 자신을 계시하시고 당신 성의(뜻)의 비밀(신비)을 알게하셨다』(계시헌장2참조)는 것이 될 것입니다.
◆시작이요 마침
2, 신경의 첫구절은 이런 하느님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신경구절들은 모두 하느님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모두가 그 원천이신 하느님에 관한 첫번째 기본진리와 유기적으로 일치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은『알파요 오메가』(목시록1, 8)입니다. 그분은 우리신앙의 시작이요 마침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신경에서 말하는 그뒤의 진리들이 모두 우리로 하여금 첫구절이 말하고 있는 우리 신앙의 하느님을 더욱 더 완전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이 자신 안에 그리고 당신의 내밀한 생명 안에서 누구이신가를 더 잘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정말 그분의 업적들-창조의 업적과 구원(救贖)의 업적-을 앎으로써 그분의 인간에 대한 구원 계획 전체를 앎으로써 우리는 옛 계약과 새 계약속에 계시되어 있는대로의 하느님에 관한 진리안으로 더욱 더깊이 들어갑니다. 그것은 점진적인 계시인데 그 내용들은 신경속에 종합적으로 정식화(定式化)되어 있습니다. 신앙 개조(個條)에서『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라는 첫말에 표현되는 진리는 완전한 의미를 요청합니다. 자연히 하느님의 신비는 계시를 통해 한계내에서 우리에게 접근가능한 것이됩니다.
3, 우리가 신경에서 고백하는 우리신앙의 하느님은 우리 신앙의 조상(로마서4, 12-16)이신 아브라함의 하느님입니다. 그분은『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즉 이스라엘의 하느님(마르꼬12, 26과 병행구)모세의 하느님-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마서15, 6참조)』하느님입니다. 우리가『하느님…아버지를 믿나이다』라고 할 때 우리는 이것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이미『예전에는 예언자들을시켜 여러번 여러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고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 하셨다』(히브리1, 1~2)고 하는 그분과 동일한 하느님입니다. 역사안에서의 점진적인 자아-계시를 묘사하는 이말의 원천이신 그분은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 강생하신「말씀」안에 완전하게 계시되었습니다. 이 아들-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 신앙의 하느님은 결정적으로 아버지로서 확인됩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감사합니다…』(마태오11, 25)라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에 의해 하느님은 그런 분으로서 인정받고 현양받으시며 이 하느님이 하늘과 땅의 주인, 「우리」아버지(마태오6, 9)라는것을 우리도 발견하도록 명백히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위격(位格)
4, 그래서 계시의 하느님『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로나서15, 6)은 우리 신앙 앞에 위격적 하느님으로 자리잡습니다. 우리 인간「나」앞에, 우리 각자와 모두 앞에 불가해(不可解)한 하느님「나」로서 자리잡습니다. 그분은 진실로 그분의 심오한 신비 가운데, 불가해한「나」이지만 계시에서 우리에게 자신을『열어 놓아』우리는 지극히 거룩한 하느님『당신(너)』으로서 그분께 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각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당신 앞에 포용하시고 그 모든 것을 무한히 능가하시고 초월하시는 우리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대단히 가까우시고 아우구스띠노 성인이 썼듯이『나의 가장 내부에 그윽히 있으시고』(고백록III권VI장11), 우리 내밀한 존재에 참으로 친밀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5, 이 하느님, 우리 신앙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아버지, 우리 아버지 하느님은 동시에 예수께서 친히 부르신것과 같이(마태오11, 25)『하늘과 땅의 주인(주님)』입니다. 그분은 사실 창조주입니다.
타르소출신 사도 바오로가 아례오빠고 법정에서 아테네 시민들 앞에 나타났을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여러분이 예배하는 곳을 살펴보았더니「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까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미처 알지 못한채 예배해온 그분을 이제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과 그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입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므로 사람이 만든 신전에서는 살지 않으십니다. 또 하느님에게는 사람손으로 채워드려야 할만큼 부족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들이 살아갈 시대와 영토를 미리 정해주셨습니다. 이리하여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듬어 찾기만하면 만날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간다」는 말도있지…』(사도행전17, 23~28)
이 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타르소 출신 바오로는 아테네의 아레오빠고 법정에서 크리스찬 신앙의 기본적인 첫째 진리를 알립니다. 그것은 우리 역시『나는 믿나이다. 하느님(한분이신 하느님)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하는 말로 고백하는 진리입니다. 이 하느님-계시의 하느님-이 그 당시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알지 못하는 신(神=하느님)』입니다. 그분은 그 당시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찾고』『더듬는』(사도행전 7, 27)그 하느님입니다. 그분은 불가해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모든 것을 포괄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안에서 숨귀고 움직이며 살아갑니다』(사도행전17, 28). 앞으로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이 하느님에게 접근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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