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일터는 신설본당인 창동 천주교회였다. 성당 신축부지로 매입해 둔 땅에는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었고 두개의 본당에서 분활돼온 4백여명의 신자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는지 휴지같은 교적만이 손에 쥐여져 있었다.
신부님과 함께 시장지하실을 빌어 쓸고 먼지를 닦고 미사준비를 하고 제의를 차리고 첫 미사를 집전했으나 첫 미사에 나온 신자는 백명을 채우지 못한 숫자였다.
성당 신축부지의 쓰레기를 치우고 기공식을 하면서 신자들의 미사 참석자는 늘어났고 본당이 먼 관계로 잊혀지고 있던 신자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첫 방문은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가난의 설움과 실패의 아픔을 나누며 살아가는 뚝방 동네사람들이였다.
내가 가난한 자요, 외로운 자였으며 실패와 좌절을 겪은자이기에 나와 같은 가난한자들을 위하여 하느님이 나를 선택하셨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색은 하수구의 냄새가 코를 찌르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 같은 곳이요. 가난에 찌든 형제 자매들의 단칸방이 으리으리한 가구로 고급주택보다도 마음이 편리 곳이었다. 시커멓게 때가 묻은 냄비에 쉬파리가 들끓는 부뚜막에서 끓여온 라면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그들과 동류의식을 느꼈고 수녀님과의 약속을 실천하고있다는 기쁨을 느끼게도 했다.
창동교회의 첫 입교식 공지를 하고 제1차 입교식에 나온 예비신자 30명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큰것이었고 처음 던진 그물에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에게 첫시간 교리를 끝내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던 순간 문득 마음속에 싹튼 생각에 부르르 몸이 떨려왔고 머리 끝이 쭈뼛해지는 감동이 나를 감싸왔다.
그것은 7년전 대구 계산동에서 세례를 받은 후 『하느님 이처럼 오묘한 진리와 더없는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기쁜소식을 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기도한 생각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기도를 까맣게 잊고 있었고 오직 하루하루의 생활을 영위하는 일에 몰두해 있었으나 하느님은 7년전의 기도를 기억하고 계셨고 그 기도를 현실로 이루어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주보 성인인 포교사업의 대주보프란치스꼬 사베리오 성인의 전구가 작용했으리라고 믿어졌다.
극동의 전교를 위하여 수만리 육해로를 땀흘리고 수고했으나 마카오 앞바다의 상천도에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운명하신 한을 나같이 작은 자를 통하여 이루시려고 하느님께 열심히 전구하고 계셨기에 나의 기도가 응답된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청상과 지상을 잇는 그 어떤 선을 발견하는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작은 봉사와 몇 안되는 예비자들을 가르치고 가난한 자를 방문하여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나의 활동이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큰 일의 일부분이 된다는 사명감을 갖게 해주었다.
예비신자들 그들에게 내 인생의 이야기가 내 실패와 좌절의 이야기가, 내게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의 이야기가, 질그릇을 택하여 상신의 값진 도구로 쓰기는 이야기가 그들의 이야기가 되었고 그들의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이정표가 되어감을 느끼게 되었다.
또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수 있는 아픔이 있었고 그들의 외로움을 받아들일수있는 외로움이 내게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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