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은 창조주 기려
1. 『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라는 말은 함으로써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존재하신다는 확신을 표명합니다. 이것은 『나는 믿나이다』라는 말의 의미에 관한 앞의 교리에서 이미 다룬 주제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느님의 존재에 관한 진리는 우리가 앞서의 인용한 지혜서 (13, ~9) 와 로마서 (1, 19~20참조) 구절들이 증언하듯이 우리 이성이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았을 때 단순히 인간 이성만으로도 알수 있습니다. 그 구절들은 창조자 (또는 제1원인)로서의 하느님에 관한 지식을 말합니다. 이런 진리는 성서의 다른 구절들에도 나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어떤 의미로 당신 작품들을 수단으로해서『볼 수 있게』됩니다.『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얘기하고, 창공은 그 (그분이) 손수 하신 일을 알려주도다.
낮은 낮에게 말을 (그 이야기를) 전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그 메시지를) 전하는도다』(시편18/19, 2~3).
이 피조물들을 현양하는 우주적 찬미가는 하느님을 창조주로서 기리는 찬미의 노래입니다. 여기 다른 구절도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이 많고도 많건마는, 그 모두를 지혜로써 이룩하시었으니, 온땅에 당신 조물 가득차 있나이다』(시편103/104, 24).
『당신 힘으로 땅을 만드시고 당신 지혜로 땅덩어리를 고정시키고 당신 재주로 하늘을 펼치셨다. 사람은 모두 우둔하고 알지도 못하는것』(예레미아 10, 12~14)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맞아들어가도록 (아름답도록) 만드셨더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가 한결 같으셔서 누가 보탤수도 뺄수도 없는 노릇이다』(전도서3, 11과14).
표상(表象)이 뜻하는 것
2. 감도받은 저자 (성서저자) 들이 그들 시대 당시에 맞는 세계에 대한 표상을 사용하여 창조주 하느님에 관한 종교적 진리를 표현하고 있는 구절들은 몇 개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확실히 과학 이전의 표상입니다만 종교적으로 진실된 표상이며 시적으로 빼어난 표상입니다. 철학적 우주론과 과학적 우주론의 발달로 우리시대 사람이 사용할수 있는 표상은 사심(편견)없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비교할수도 없으리만큼 더 의미있고 효과적입니다.
각 분야 과학들이 인간과 세계에 대해, 소우주와 대우주에 대해, 질료의 내적 구조와 인간 심령의 깊이에 대해 우리들에게 밝혀주는 놀라움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주를 창조하여 그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최고 지성이 있음을 인정하도록 이끌면서 성서 저자들의 말을 확인케할 정도입니다.
존재 하시는 분이 계시
3.『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하는 말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계시하신 그분에 대한 언급입니다.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은 존재하시는 그분입니다 참으로 존재하시는 분만이 사실상 자신을 계시하실 수 있는 법입니다. 계시는 어떤 의미에서 난외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하느님의 존재라는 문제에 관여합니다. 그리고 신경에서도 하느님의 존재를 문제로 제시하는 것을 자신의 권리로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미 말한대로 성서와 성전과 교도권은 이성의 도움만으로 어느정도 하느님을 알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긍정합니다(지혜서13, 1~9, 로마서1, 19~20, DS300).
그러한 긍정은 신앙을 통한 하느님의 존재인식-『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라는 말로 표현하는-이 이성만이 탐구할 수 있는 이성적 특성을 가진다는 요청을 내포합니다.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믿나이다』또는『나는 내가 믿을수 있도록 이해하나이다』이것이 신앙에, 신학에 이르는 길입니다.
4. 우리가『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라고 말할 때 우리말은 구체적인「고백」의 성격을 띱니다. 우리의 고백으로 우리는 자신을 계시하신 하느님께 응답합니다. 고백을 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고 그것을 우리 확신의 내용으로 표현합니다. 자신을 계시하는 분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수있게 해주실 뿐만아니라 그분이「누구」이신지, 그리고 그분이「어떻게」계시는지도 알수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아계시는「하느님이 누구냐?」하는 하느님의 본질에 관한 질문에로 우리를 끌고갑니다.
5. 여기서 우리는 출애급기에 서술되어있는 성서의 사건 (3, 1~14) 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호렙산 근처에서 양떼들에게 풀을 먹이던 모세는 이상한 현상을 보았습니다.『떨기에서 불꽃이 이는데도 떨기가 타지않는 것을 보았다』(출애급3, 2) . 모세가 가까이가자『야훼께서 보시고 떨기 가운데서「.모세야, 모세야」하고 부르셨다. 그가 대답하였다.『예, 말씀하십시오』하느님께서는 『이리로 가까이 오지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발에서 신을 벗어라』하시고는 다시 말씀하셨다.『나는 네 선조들의 하느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모세는 하느님 뵙기가 무서워 얼굴을 가렸다』(출애급3, 4~6).
출애급기가 묘사하는 그 사건은『신현(神現)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예외적 징표속에 하느님의 나타나심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모든 신현 (Theophania) 들 가운데 그것은 하느님 현존의 징표로서 특별히 감동적인 것입니다. 하나의 신현은 직접적인 하느님의 계시가 아니고 하느님의 특별한 현존이 나타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경우 이 현존은 불타는 떨기속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서도 알려지고 불타면서도 타없어지지 않는 떨기자체를 통해서도 알려집니다.
하느님의 본질은 존재
6.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모세에게 맡기시려는 사명을 그에게 계시하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을 에집트의 노예살이에서 끌어내어 그들을 약속받은 땅으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사명을 수행하는데 강력하게 도와주겠다고 모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그러자 모세가 하느님께 말씀드렸습니다.『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고 말하면 그들이「그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물을터인데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나는 곧 나다』하고 대답하시고『너는「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라고 하시는 그분이다」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출애급3, 12~14)
이와 같이 우리 신앙의 하느님-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은 당신 이름을 계시하십니다. 그것은『나는 내가 있다인 자다』입니다. 이스라엘의 전통에 따르면 이름은 본질을 표현합니다.
성서는 『주님』(예ㆍ지혜서1, 1)『사랑』(요한4, 16)『자애로우신 분』(시편85/86, 15)『진실(충실)하신분』(Ⅰ꼬린토1,9)『거룩하신 분』(이사야6, 3)등과 같은 하느님의 다른 이름들을 댑니다. 그러나 모세가불타는 떨기가운데서 들은 이름은 마치 모든 다른 이름들의 뿌리와 같습니다.「있는 그분」은 바로 하느님의「본질」을 표현합니다. 하느님의「자존 (自存)」, 자립유 (自立有) 입니다. 그분의 현존 앞에서 우리는 엎드려 흠숭할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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