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만씨(요셉ㆍ33세)는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척추장애자.「냉대」「멸시」「자학」「좌절」등의 용어는 이미 그의 사전에 빨간색으로 몇겹씩 줄쳐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조그만 행동과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에는 냉대받고 멸시받았던 과거에 대한 저항감도, 좌절했고 자학했던 어두운 시절의 그림자도 전혀 포착되지 않는다.
오히려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가 정상인들에게 베푸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따름이다.
서울 빈첸시오회 교육분과위원이라는 작은 직책 속에서 보이지 않는 빛을 발산하고 있는 이씨는 그가 고통을 체험하였기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가 좌절해봤기 때문에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알부자로 소문난 부자집의 막내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던 이씨는 3살되던 해 냉장고에 오른 손 엄지손가락이 잘리면서 천형의 길로 들어서게됐다.
손가락이 잘리면서 입은 충격으로 척추카리에스(곱사등)라는 몹쓸병을 얻은 이씨는 자신의 치료로 가산이 다 날아가는 비운을 짊어져야 했다. 자신으로 인해 집안의 재산이 다 날아갔지만 식구들은 오히려 자신을 동정해주었기에 마음의 상처를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중학교에 다니던 무렵 사춘기에 접어든 이씨는 친구들의 놀림이 뼈속 깊이 파묻히는 고통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왜 나는 병신인가』를 심하게 질책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는 몇달다니다 포기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였지만 자신을 이길만한 힘과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집에 틀어 박혀 허송세월을 하던 이씨에게 또 한번의 시련이 다가왔다. 아버지의 죽음후 시작된 그의 병은 삶에 대한 의욕을 더욱더 상실케했다. 26세까지는 그렇게 좌절하며 살았다.
그러나 작은형을 따라 이리로 내려가면서 조그만 삶의 전기를 찾는듯했다. TV수리학원에 다니면서 기술을배우고 취직도 됐다.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한 끝에 사장의 돈독한 신임을 받을 수있었다. 문제는 다시 서울로 올라오면서부터 시작됐다.
장애자라는 이유하나 만으로 28군데 회사에서 취직을 거절당했다. 이젠 끝까지 왔다고 생각도 했다. 이 사회가 저주스러웠고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 또 다시 방안에 틀어박혀 자학과 좌절하는 시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던중 작은 형수가 성당에 나가보자고 제의했다. 집에 있는 것보다 나을것 같아 따라나가기 시작했다. 교리를 배우기 시작한지 한달 보름만에 레지오 마리애의 문을 두드렸지만 예비자이기에 거절당했다. 그때 그는 빈첸시오회라는 생소한 단체의 이름을 접했다.
프레드릭 오자남이 누구이며 그가 무엇을 했는지 알았다. 이제는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베풀 수 있다는 희망이 용솟음쳤다.
『모든 것이 미웠고, 모든 것을 증오하고 싶었지만 빈첸시오를 통해 나도 베풀 수 있다는 벅찬 희망을 얻었다』는 이씨는 『그 모든 변화가 하느님으로부터 이뤄졌기에 받은 것만큼은 반드시 돌려드려야겠다는 결심을했다』고 털어놓는다.
1년에 1백번 이상의 가정방문, 갱생원, 교도소 위문, 환자의 병원 알선 등 조금도 쉬지않고 뛰는 이씨는 『남을 도운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그 일이 모두 나의 일이고 나의 고통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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