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고령의 노환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뜻하나로 오롯이 「전교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전교할머니」가 있다.
때로는 친구같이, 어머니같이 부드러우면서도 굳건하게 예비자들에게 「삶의 신앙」을 보여온 강정수(모니카ㆍ81) 할머니.
강정수 할머니는 30여년 전 6ㆍ25직후 세종로본당 토박이신자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40여년을 미신자 전교에 주력해왔다.
40세가 넘는 중년의 나이로 영세, 신자로서의 출발은 남들보다 한걸음 늦었지만 말씀 대한 강 할머니의 신앙은 그 누구보다 크고 뜨거워 그동안 1백여명에 달하는 미신자들을 하느님의 성전으로 이끌 수 있었다.
반듯하게 쪽진 머리에 하얀 모시저고리 차림으로 얼핏보면 「전교사」란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얌전하고 조용해 보이는 강 할머니지만 그 마음속에는 수십 년을 일관해온 대쪽같은 전교 신념이 담겨있다.
그것은 『하느님은 육성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전해야한다는 것』
전교대상자를 배당받으면 입교를 권유하기에 앞서 그 집의 어린이들을 돌봐주고 고부간의 갈등을 해소시켜 주는 등 인간적인 친교부터 맺어온 강 할머니는 『전교자에게는 어떤 선입견이나 평가의 눈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다가가 감동과 친절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원칙 때문인지 강 할머니와 그를 통해 신앙인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소문이 날 정도 사이가 좋아 40년 전 처음 말씀을 전했던 임실비아씨와는 평생을 자매처럼 다정하게 지냈고 얼마 전에는 세종로본당 신자묘제 용인 영복산에 나란히 두개의 묘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렇듯 강 할머니가 신앙의 연륜을 탄탄히 쌓으면서 가동과 친절로 꾸준히 전교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데는 입교당시에 겪었던 인간적인 아픔이 커다란 밑거름이 됐다.
종로구 익선동에서 서울 토박이로 태어나 별 어려움 없이 생활해오다가 갑자기 닥친 부군과의 사별. 곧이어 발발한 6ㆍ25전쟁.
전쟁 중 동족끼리의 살상을 지켜보면서 아픔과 허무를 짙게 맛보아다는 강 할머니는 무언가 잡아야겠다는 절박한 심경으로 종교에 귀의, 그 후 인간적인 절망감을 하느님에 대한 가없는 신앙으로 승화시켜왔다.
이런 할머니의 줄기찬 「전교의 길」은 작은 결실을 맺어, 지난 82년 당시 본당주임인 최익철 신부로부터 「전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할머니가 심각하게 당면한 문제는 고령에 따른 노환.
10여 년 전부터 죽을 싸가지고 다니며 점심식사를 할 정도로 노쇠한데다 3년 전부터는 백내장이 겹처 침침한 시력때문에 할머니에게는 그 좋은 성경을 못읽는 것이 「한」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전교의 열의는 식지 않아 검년초안에도 개신교 열성신자였던 60대의 내외를 입교시켜 함께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세종로 본당에만 해도 수십명이 넘는 대녀를 거느리고 있는 강 할머니를 두고 주변에서는 말없이 묵묵히 자기의 소임을 다해온 「참 신앙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 본당 레지오와 노인대학에 참여하고 있는 강 할머니는 주님이 부리시는 「그날」까지 전교자로 활동하고 싶다면서 『이제는 몸보다는 마음으로 신앙을 전할 때 』라고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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