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키엘 예언서(I)
I.객관
1)역사적 배경 및 개요 대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인 에제키엘이 불림을 받던 때는 유대민족으로서는 가장 혹독한 시련의 시기라 할수 있는 유배기간 중이었다.
그당시(기원전 612~539)의 국제정세는 제국 교체가 있을 때였다. 앗시리아 제국의 멸망(1300~612)과 함께 신 바빌론제국의 성쇠(605~539)에 따른 페르샤제국의 발흥(539~333)을 역사는 말한다.
605년 근동의 주역은 바빌론의 젊은 장군 느부갓네살이었으며 그는 비옥한 반달지대 전역을 거쳐 에집트에이르는 중동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그 권력의 소리가 천하에 포효했다. 이때 유대인들은 친 에집트파와 친 바빌론파로 갈려내 적파벌과 외세의 침입에 위협받아 나라의 뿌리가 와해되고 만다. 두차례에 걸친(일차 597 2차 587)밧줄로 묶인 포로행렬은 죽음의 행군 바로 그것이었다. 선민 이스라엘은 우상의 도시 바빌론에 버려진채 온갖 잡동사니의 도전을 받아야했다. 따라서 야훼 유일신앙에도 큰 위협이 초래되면서 그들은 도시의 건설공사나 지주들의 손아귀에서 노동으로 목숨을 연명해야만 했다. 이렇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허허벌판에 버려진채 희망의 빛이라곤 한톨없어 보이는 위기에 인간과 같지않으시고 약속에 성실하신 하느님은 예언자 에제키엘의 소리로 동포들에게 희망을 던지셨다. 에제키엘은 포로민 가운데 위로와 영적조언을 주는 구심점이 되면서 그 예언서는 다시 본국으로 복구될 희망을 그림 그리듯 생생하게 묘사한다. 하느님께서 당신 친히 택하신 백성들을 통해 온 인류를 축복하시려는 구원의지를 에제키엘안에서 생생히 묘사해주고 있다 하겠다.
2)인물과 생애
에제키엘은 사제가문에 속하며 부지(Buzi)의 아들로서 여호야킨 왕과 함께 첫번째 포로로 잡혀서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의 지도급 인사중의 하나다(1,1~3).
그는 포로로 잡혀간지 5년째 되던해 30세에「그발」강가에서 현시중에 야훼께 불림을 받았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하느님의 명령에 응한다.『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엮어내는 상여 소리』가 기록되어 있는 두루마리를 받아먹어야 할때는 매우 주춤거렸지만 그 명령에 복종하여 먹고 보니『꿀처럼 입에 달았다』(3,3)고 고백한다. 이로써 야훼께 억세게 사로잡힌 몸이 되어 이스라엘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임명받고(3,17)시작한 그의 예언활동은 포로민과 팔레스티나에 남은 동포들을 대상으로 활약했다.
에제키엘이란 히브리어로「하느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듯이 포로민의 힘이 되어줄뿐만 아니라 팔레스티나에 남은 동포들에게도 예언을 했다. 이는 그가 예언활동을 하는 동안 두 지역을 오가며 활동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몸은 비록 바빌론에 있었다해도 하느님께 들어올림을 받아 두 공간을 극복하였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예언활동을 사랑한 그는 혼신을 다해 활약한 행동의 사나이였다. 그의 극적인 행동이나 일반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환상중의 선포는 일반범주를 벗어난 행동들이었기 때문에 동포들로부터 가장 많이 오해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언자의 이런 극적이면서 상징적인 행동은 선민사상에 중독되어 안일한 구원관으로 희락하는 낙관주의자들이나 절망에 빠져 무력해진 사람들에게 대단히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유별나게 많은 상징행동을 통하여 동포들의 눈길을 끈다음 그들이 그뜻이 무엇이냐고 물어올 때 행동뒤에 숨은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이다.
그는 결혼했으나 예루살렘이 망하던 해(587)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으며(24,15~19) 그 자녀에 대해서는 알려진바 없다. 사제가문에서 출생한 그는 예레미야와는 달리 사제직을 봉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통일왕국시대 솔로몬의 형 아도니야가 에비아달 사제와 합세하여 반란을 일으킨 반면 사제사독은 나단예언자와 함께 솔로몬들 지지했다. 따라서 에비아달 사제는 아나돗으로 유배갔고 그 후손 중의 하나가 바로 예레미야이며 예루살렘에 사제로 남아있던 사독가문의 후손중의 하나가 에제키엘이었다(열왕 上1~2). 따라서 예레미야의 작품이 신명기적 사조에 속한다면 에제키엘의 작품은 사제적 사조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에제키엘은 불림을 받고 20여년간 예언활동을 하다가 571년(29,17)경 그 활동이 끝난 것으로 보는데 그의 최후에 대해서 잘 알려진바 없으나 유다전승에 의하면 참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저버린, 이교도가 된 자기동포를 견책하다가 그 반역자의 손에 살해되었다고 전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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