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서의 보람과 일하는 즐거움으로 나날의 시간을 채곡채곡 채워가던 어느날, 교리 신학원의 은사이신 유재국 신부님으로부터 호출 명령을 받게 되었다.
찾아가 뵙고 인사를 드리자 마자『사베리오 로마 갔다 올련?』평안도 특유의 사투리로 물어오시는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처음에는 무슨 말씀인지 몰라 신부님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로마, 역사책에서나 배웠고 지리시간에 그 위치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로마에 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못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보시고 빙긋이 웃으시며 털어놓으신 신부님의 자초지종은 다음과 같았다.
올해 1975년은 성년인데 로마 교황청의 인류복음화 성에서 세계 전교 지방에서 수고하고 있는 일선 전교사들을 로마에 초청하여 그들의 수고를 위로하고자 하는 행사계획을 세웠는데 우리나라도 전교 지방이기 때문에 각 교구에서 한명씩 선발하도록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교구의 대표를 선발하는 것은 교리신학원에 위임되었고 이상훈 원장 신부님과 두분이 심사숙고한 끝에 오랫동안 일할수 있는 나를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반갑고 고맙기 그지 없는 일이었지만『나보다 먼저 졸업하고 현장에서 몇 년씩 수고하고 계신 선배들이 계신데 감히 제가 어떻게 그 특전을 받아 들일수 있겠습니까?』하고 진심으로 사양의 뜻을 표하였다.
이러한 내 사의를 신부님은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시고『모든 경비는 교황청에서 부담을 할테니사베리오는 용돈만 준비하면돼』하시고 가는 것을 기정사실화 시키는 것이었다.
해외라고는 울릉도 밖에 가보지 못한 우물안 개구리가 영원의 도시 신앙의 고향 로마에 그것도 관비 여행이 아니라 교비(敎費)여행을 가게 되었다는 그 벅찬 감격을 누를 길이 없었고 그 기쁨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것 같은 심정이었다.
75년 10월 각 교구 대표들 10명과 함께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로마에 도착하였다. 첫날 울바노 대학에서 있은 각 나라의 전교실태를 보고하는 회의가 있었는데 황색백색 흑색의 전교사들이 모인 것이 마치 세계 인종의 전시장과 같았다.
회의가 끝난 후 인류복음화성이 지급하는 용돈 17,000리라를 받게될 때 한국대표로『프란치스코리 코리아』라고 불려졌을 때의 그 감격. 아무도 내 이름을 기억해줄리 없지만 한국땅에서 그쓰라린 배고픔과 외로움을 이긴 나의 이름이 이처럼 많은 사람 앞에서 불려진다는 그런 감격이었다.
원형극장 사자들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와 흉분 된 군중들의 합성, 그 속에 우리 승리하리라고 찬송을 부르면서 굶주린 사자 앞으로 나아가는 나어린 신자 소녀가 보이는것 같았고 까따꼼바, 로마관원들의 눈을 피하여 땅바닥에 물고기를 그리던 신자들의 모습, 라떼란 대성전 그 웅장한 한조각 돌기둥과 너무나 초라하고 작은 내 모습을 되새기게했다. 그리고 베드로 대성전 천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변함없는 그 의연한 자태. 세계 가톨릭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어 무릎을 꿇었을 때, 「주여 제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저를 사랑하시고 섭리의 손길로 이끄시나이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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