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세계 질서 변화의 파급은 이 땅에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별히 우리 고유의 윤리 질서인 종적상하의식에 심각한 문제점이 생기고 있다. 사랑 협력ㆍ평등의 낯선 횡적 새 질서는 우리의 피 속에 용해됨 없이 밖으로만 흐른다. 즉 질서에 조화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제 자리를 잡게 되겠지만 아득하다. 이런 중에서도 크게 걱정되는 것은 존경의 대상이 없는 세상으로 되어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존경 상실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오가는 눈빛 속에서 대화 속에서 그것을 직감하게 된다. 어떤 이는 존경의 차원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기실 차원문제가 아니라 존경 자체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아무 것도 존경할 수도 믿을 수도 없어요.』하는 말을 예사로 듣게 되고 모두 고슴도치형의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존경합니다』하던 말이 내일 곱절의 경멸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어 무섭다.
이런 사정은 교중생활에도 예외일 수는 없다.
과거 20년 전 혹은 10년 전의 선교 사정과 현금과는 심한 차이가 있다. 과거에 교우들의 사제 존경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장상의 공시(公示) 하나만으로도 혹은 교회의 종소리 한 번으로도 모든 회중의 협력을 구할 수가 있었다. 그만큼 윗사람의 권위가 서 있었고 표리 없는 존경심이 살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아주 다르다. 아무리 열성적인 권유도 들을 때뿐 자리를 떠나면 남에게 한 말처럼 곧 잊고 만다. 강한 개별 지시가 없는 한 움직이지 않으려든다. 그것도 지시자에 대한 존경감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이 아니라 반강압적인 의무감에서만 겨우 움직여지는 정도다. 그만큼 지시자의 권위와 존경이 없어진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신자들의 참여의식을 높이기 위해 성당 청소를 부탁하고 있다.
먼저 하느님의 집(성당) 청소에 참여해줄 것을 간곡히 공석에서 부탁하고 나서 교적에서 대상자를 뽑아 청소 배정표를 제시하였다. 그 결과는 10%밖에 응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가까운 사람들끼리 5인조를 구성, 청소 반장을 지정해 주고 반장에게 그 반의 청소 배정표와 또 다른 개인마다에게 보내는 카드를 나누어 주게 하여 반장의 감독하에 청소하게 하였다. 그제서야 80% 이상 응하였다. 그래서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라는 색다른 용어가 생기기 시작한 것인가? 그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누구나 눈에 띄이는 대로 제대에 꽃 장식도 하였고 깨끗하게 청소할 줄도 았았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을 합시다』하는 권유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청소뿐만 아니라 무엇이나 마찬가지다. 왜 그렇게 변하는 것일까? 바쁜 세상에 살다보니 마음까지 바빠져서 건망증 증세일까? 그렇게 되기까지는 지도자의 역량, 교회의 분위기, 개인의 신심, 사회의 변천 등 여러 복합의식이 작용하겠지만 무엇보다 지시자의 권위가 서지 않기 때문이다. 존경 상실 시대를 사는 만성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런 점에서 교회의 강론 내용도 추상적이거나 제창 위주에서 벗어나 사실적이고 보다 개별적이 아니고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리고 강론의 연장으로서 구체적인 지시까지도 구상되어야 할 것 같다. 참으로 일하기 힘든 세상이다.
가끔 듣게 되는 소리지만 어느날 몇몇 사람들이 윗사람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난에 앞서 먼저 자성하는 자세가 참으로 아쉽다. 『존경의 대상이 없어진다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들 자신을 위해 슬픈 일이지요. 사실 존경의 대상을 많이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존경할 수 없다고 할 때 우리 마음에는 공허가 있을 뿐입니다. 존경하던 대상에 실망을 느끼신다니 사실이겠지요. 그러나 진정한 존경은 모든 약점을 수용할 때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어릴 때 우리는 부모를 하느님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장성하면 부모도 비판의 대상이 되지요. 그래도 부모께 대한 존경감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존경이란 상대적인 것이고 참된 존경을 유지시키는 끝은 사랑입니다. 아무도 존경할 수 없다고 할 때 우리 안에 사랑이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가장 큰 불행이지요. 비록 비난할 수 있어도 경멸해서는 안 됩니다. 경멸은 사랑을 거역하는 것이니까요. 더 성숙된 자신이 되기 위해서, 더 큰 존경의 대상이 더 큰 사랑이 우리에게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모두 제각기 결점을 갖고도 가기 수하를 지도해가며 사는 것이 인생살이가 아닐까요?』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