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바티깐 공의회가 1962년 10월 11일에 열리고부터 벌써 24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공의회가 끝나고 벌써 20年이 지났다. 이 시점에서 세기적인 공의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무의미한 일은 아니리라 믿는다.
특히 지난날 고의회의 결과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소리가 없지 않았고 심지어는 공의회가 잘못 되었다는 말까지 나왔으니 지금쯤 다시 되돌아 보는 것도 좋은 일이며 특히 공의회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데 어떻게 받아 들여졌고 또 어떻게 실천했는가를 반성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 믿는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아 공의회가 열렸어야하는 이유 등을 말해보고자 한다.
현재 우리가 보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 어디에나 구석구석에 전파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꼭같이 과거 몇세기 동안에도 많건 적건간에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초세기 신자들 역시 복음선포의 위대한 사업은 그리스도의 제자인 사도들 자신들에 의해 대부분 완수되었다고 보아왔다. 그것은 성 아우구스띠노와 오리게네스의 저서 가운데 『로마군이 데리고 오는 노예를 가운데는 이상하게도 때로 아직 복음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소박한 표현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콘스탄틴 대제의 종교자유(선교자유)선언 후 교회는 급속도로 전파되고 번창되어서 그 당시 서양사람들의 생각은 이미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세상 어디서나 전파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러기 때문에 세기를 통해 그때마다 열린 공의회에서는 교회권위나 교의에 대한 도전을 처벌 처단하고 보다 명백하도록 규정짓고 선언 하는것 이외에 다른문제 즉 교회와 그 당시의 현실문제나 교회자체의 반성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사실상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은 옳고 또 교회에서 하는 것 만이 옳다고 생각한 나머지 모든 것을 일반적으로 규정짓고 해석했다. 그러한 서양중심의 생각들은 20세기에 이르러서까지 계속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방적인 생각 안에서도 시일이 지나서 그렇지 않다는 것도 발견되었다. 즉 첫째는 세계가 아직 일반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이 그렇게 교화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세상에는 그리스도교 이외에도 다른 수많은 종교가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신봉하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들 종교도 연구해볼만한 충분히 중요한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교가 유일무이의 구원의 종교라고 주장하며 진리를 가르친지도 벌써 2천년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허망한 교의를 가지고 자칭 그리스도교라면서도 이단적인 요소를 다분히 품은 사이비 신생종교들이 나타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런가하면 비그리스도 신생종교 역시 무시못할 숫자로 등장한다는 것은 진실을 말하면서 진실을 따르지 않은 가톨릭교의 현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교회를 배척하고 교회에 문제를 던지는 집단이나 개인에게까지 해명하고 답해주어야할 책임이있고, 그들의 불평에 귀를 기울이려 만인에게 복음을 선포해야할 책임이 있는것이다. 그리고 교회를 등지고 떠나면 세계도, 거대한 비그리스도 세계도 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품어주어야 할 것이 바로 가톨릭교회이다.
그리고 세계는 옛날 같지않다. 신시대요 변천했다. 그런데 교회만이 구태의연하게 자기 생각만을 주장하고 있을때가 아니다. 가톨리교회는 모든 언어, 민족, 국가, 이데올로기를 초월해서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되어주어야한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자체 내에서까지 진보, 보수 양측의 불화가심했다. 공의회를 개최한 후에도 개최여부가 시비거리가 되었다면 독자들은 믿어주려는지.
이상과 같은 그 당시의 현실을 되돌아보건대 공의회는 꼭 열렸어야만 했고 무엇인가 변화가 있어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의 교회가 처해 있는 처지를 다른 측면에서 보더라도 쇄신의 계기가 있어야했다. 즉 교회를 이끄는 고위 당국자들의 독선적이고 선민적인 태도는 옳은 것을 말하면서도 옳은 것으로 보이지 않게하는 요소가 되었고 많은 비신자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게 하였다.
공의회를 개최한 요한 23세 교황은 이러한 현실에 직면한 교회를 쇄신코자 과감히 공의회를 소집했던 것이다. 요한 교황의 업적은 길이 빛나리라고 본다. 그러나 요한 23세가 승하하고 그 당시에 교회내에 떠돌았던 소문을 들어봐도 보수적인 일부 당국자들이 얼마나 교회쇄신에 역류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 소문 중 하나를 소개한다면『만일 요한 23세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교회는 제자리를 잃고 어디로 가서 엎어졌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고 한말이다.
요한 23세 교황의 뜻은 참된 그리스도 교회의 면모로 일신하자는데 있었다. 바로 아픈 상처에 소독을 하고 메스를 댐으로 고통은 있으나 건전교회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공의회 이전과 이후의 교회는 사실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차이를 불만스럽게 바라보는 사람과 만족스레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독자들은 어느 태도를 옳다고 하겠는가. 스스로를 반성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결론적으로 교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쇄신해야할 필요성이 있었기에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했다고 말할수있다.
그러나 개혁에는 반드시 찬반이 따르기 마련이고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본래의 의도대로 개혁되기란 어렵고 대개의 경우 시작한 사람과 끝맺는 사람의 의도에도 차이가 나고 또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계속)
교회의 현재적응, 곧 쇄신을 목표로 개최됐던 역사적인 제 2차 바티깐공의회는 교회내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지난해로 폐막 20주년을 맞이했다. 한마디로 오늘날의 교회는 공의회로 인해 변모된 모습을 지니고있으며 따라서 현대교회와 공의회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곧 공의회를 이해하지 않고는 현대교회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현대교회의 진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공의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선행되어야한다. 차제에 본보는 공의회폐막 20년과 이를 기념해 열린 세계주교특별시노드를 계기로 공의회 전반을 되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본 기획은 총괄편에서 ①공의회개최의 필요성 ②공의회정신과 가르침 ③공의회폐막 20주년후의 세계와 한국상황 ④한국교회는 공의회를 어떻게 수용했는가를 살펴본후 그 가르침을 토대로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점검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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