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의 은혜를 깊이 맛본 재미교포 의사가 성모신심이 현저히 줄어든 오늘의 교회에 아픔을 느끼며 본보에 투고해왔습니다. 특히 6ㆍ25동란시, 북괴군 기갑병으로 징집됐던 필자는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체험한 생생한 감격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본보는 이 신앙수기를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미 해군 항공모함 렉싱톤호갑판에서 함재기들이 이착륙할 때마다 뿜어내는 요란한 소음과 진동 속에 넋나간 사람처럼 얼마동안 서 있었는지 모른다.
의무실의「존 레게트」위생 하사관이 와서『Commander LEE(이중령님)! Commander LEE(이중령님)!』하고 부르는 소리도 못듣고 30수년전의 회상에 잠겨있다가 드디어는「존」하사관이 흔드는 바람에 겨우 정신을 차릴수 있었다.
나는 미 해군제 1예비역 중령으로 1년에 한번 2주간을 다시 현역으로 복귀해야 한다. 지난 85년에는 항모 렉싱톤호의 군의관으로 배치됐다.
렉싱톤호에 도착하자마자 감개무량했던 것은 배의 크기나 전투기수에 압도돼서가 결코 아니다.
옆의 동료군인들에게는 함재기의 소음때문에 위생하사관이 부르는 소리도 못들었다고 생각됐는지 모르나 실제로는 아무도 모르는 기막힌 사연이 이 항모와 나 자신 사이에 얽혀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바로 이 렉싱톤 호갑판에서 전투기들의 소음을 가까이 듣는 순간, 악몽같은 과거가 되살아났던 것이다.
때는 35년을 거슬러 올라간 1950년 여름, 낙동강 전투의 공방전이 치열해져가고 있을때 나는 불행히도 평양거리 에서 강제로 붙들려 불명예스럽게도 잠시나마 북괴군 탱크병이 돼 남하하고 있었다.
무덥고 피로에 지쳐 졸면서 행국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제트기의 굉음에 의해 깜짝 놀라 깨어나게 됐다.
곧이어서 무서운 폭음과 함께 주위가 온통 불바다가 되어버려 무의식 중에 탱크에서 뛰어내려 땅에 엎드렸다.
폭격이 얼마나 계속됐는지 알 수가 없었으나 몇 10년이나 되는 것같이 느껴졌으며 진정으로 통회하면서 성모님께 매달렸다.
사실 49년 11월 평양 대신리 본당 주임이신 박디모테오 신부님께서 북괴 공산당들에게 구속되시기 직전에, 고백성사를 받고는 그때까지 미사도 참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박신부님께서 구속되신지 한달후 성탄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진남포까지 갔으나 너무나 엄중한 경계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윤공희 대주교님댁에서 몰래 이남방송을 들었다.
자정미사 실황중계방송에서 노기남 대주교님께서는『오늘 여기서와같이 미사참례를 못하고있는 북한신자들을위해 기도합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들은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서 미사참례는 물론 고백성사도 못하였으므로 나는 무조건 하느님께 내 모든 죄를 통회하고 용서해줄것을 간절히 청하고는 지금까지 어머니로 모셔온 성모님께 달아들었다.
『성모님! 이 전투에서 나를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덕원신학교에 가있는 동안 공산당에 의해 쫓겨나 월남한 어머님과 형제들을 꼭 만나볼 수 있게 해 주소서…』하고 애소했다.
더 큰 폭음과 함께 흙ㆍ돌덩어리들이 마구 내머리와 온몸 위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말 절망의 순간이 다가왔다.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느낀 나는『성모님! 저를 구해주시옵소서. 그러나 주님과 어머님의 뜻이 아니라면 차라리 저의 영혼을 빨리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는 의식을잃어버렸다.
몇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으나 겨우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으며 온몸을 까딱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온몸이 폭격으로 인한 흙덩이와 돌덩어리로 덮여있는 것이 아닌가!
겨우 빠져나와보니 사방이 불에 타 고약한 냄새만 내뿜을 뿐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
아마 나도 죽은줄 알고 그냥 내버려두고 떠났으리라! 이 얼마나(북괴군의 비정함이)다행한 일이었으랴!
이 일이 있은후 수10년이 지나 미해군 군의관으로 근무중 알게된 바로, 이때 한국해역에서 전투기폭격작전에 참전했던 항모가 다름아닌 이 렉싱톤호였다는 게 아닌가!
바로 이 항모에서 출격했던 전투기한테 죽을뻔 했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이제 북괴군이 아닌 당당한 미해군 고급장교로서 바로 그 항모의 갑판에 서 있으니 이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이었겠는가!
그런데 제 2차 바티깐공의회 후 무슨 연유인지 모르나 성모께 대한 신심이 현저히 줄어든것 같다.
뿐만 아니라 성체강복예식도 사라졌으며 항상 중앙제대 감실에 모셔졌던 성체도 성당구석으로 밀려났으며 성체조배하는 신자도 거의 볼 수 없게 됐다.
로사리오 기도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해도 볼 수 없는 실정이다.
한국에서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미국교회의 사정이 그렇다는 얘기다.
미사가 끝난후「대사를 얻기위한 기도」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정말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아도, 눈을 씻고 또 씻고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공의회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 대목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는데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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