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후라고 하지만 언제나 공의회는 교회사안에서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다. 312년에 종교자유를 얻은 후 교회는 특히 교의적으로나 사목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그것을 해결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聖 아우구스띠노가 말했듯이 교회는 그만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2차 바티깐공의회의 교회헌장 안에서도 주교단은 전교회에 대해서 가지는 최고의 권능을 공의회안에서 장엄하게 행사한다.
고 되어있다(교회헌장3장22번). 성자와 성무의 일체성을 선언하고 교회법의 중요한 몇 가지를 결의한 325년의 니체아 공의회로부터 제 2차 바티깐 공의회까지 21개의 공의회를 헤아리고 있다.
근대의 공의회중에 뜨리덴띠노(1545~1563) 공의회가 특히 중요하다. 그것은 교회의 분열후 프로테스탄트(개신교)측이 제출한 문제들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가르침을 명확히 하고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교회의 전반적인 개혁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다른 문제들과 같은 목표였던 교회일치문제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도 다루기가 불가능했다. 제 1차 바티깐공의회(1869~1870)에서는 그당시 유행했던 합리주의에 대해 하느님에 대한 인식ㆍ게시 및 신앙에 대한 가톨릭의 가르침을 명백히 하고, 전교회에 가지는 교황의 절대권인 신앙과 윤리에 대한 무류성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 공의회는 1870년 10월 20일 시국문제로 인해 무기연기 되었다. 그때문에 대부분의 공의회의 의제들은 결정짓지 못한채 남아있었다. 그후 제1ㆍ2차의 세계대전, 1929년에 라떼란 조약이 체결되기까지의
불확실한 교황청의 국제적 지위등의 문제 때문에 공의회를 개최하기란 무척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이런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제 2차 바티깐 공의회는 현대세계에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동시에 많은 문제도 낳게 하였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 2차 임시총회 최종 보고서를 읽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전 세계에서 모인 대의원 주교들의 의견은 거의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의회의 가르침이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옳았다는 결론은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의회의 가르침에 대해 열성적이 못되었다는데 반성할 여지가 있다.
공의회가 열리고 있던 그 당시만 해도 교회내에서 많은 비판의 소리가 없지 않았고 그후 역시 계속해서 공의회에 대해 찬반의 의견이 있었다. 특히 보수적인 신자들은 개방된 교회에 대해 많은 실망을 느끼고, 교회의 모든 권위가 땅에 떨어진양 슬퍼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 원인은 공의회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 불완전한 가르침과 적용에 있을 수도 있지만 다른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도 있다. 어떤 새로운 것을 이해한다는것은 가르침에 의해서 되는것인데 공의회를 가르치는 성직자들의 태도와 지금까지의 성직만능주의 의식에서 헤어나지못한 소수 사제들로 하여금 그릇되게 가르쳐진 점도 없지않다.
공의회 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났던 부작용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많은 성직자의 환속, 수없는 수도자가 수도원을 이탈했다. 그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교회행정에 대한 참여 역시 그 도를 넘치고 있었다. 이러한 부작용은 행정면이나 실생활면에서 뿐만도 아니다. 교리에 까지 미쳤다. 온 세상은 한때 뒤죽박죽되는것 같은 느낌마저 주었고 교회가 온통 끝장이 나지나 않나하는 생각까지 들정도였다. 그것은 비단 서구에서만 그런것이 아니고 한국에서도 매한가지였다.
성직자들의 성사의 남용을 위시해서 그릇된 윤리의 가르침은 상황윤리에 까지 이르렀고 산아제한문제, 정의문제, 양심과 준법정신에 대한 문제, 특히 교회법을 실천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은 두드러졌다. 교리의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즉 천당ㆍ지옥ㆍ천사ㆍ마리아ㆍ구원과 원죄에 대한 문제를 교회 밖의 학설을 따르는가 하면 그릇된 해석을 신자들에게 가르침으로 많은 신자들이 어리둥절 해진 것은 말할 나위조차없다.
공의회가 막 끝나고 한국의 모든 교구에서 수많은 강연과 연구회 세미나 등으로 신자들에게 계몽한 것은 사실이나 누가 계몽시켰는가. 성경에도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면 둘다 구렁텅이에 빠진다고 하지않았던가. 공의회의 문헌도 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강사로 나서고 해설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후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진리의 가르침은 항상 성신이 인도하기 마련이다. 하느님께서는 미천한 사람으로 하여금 교회를 이끌게 하시고 은총으로 도와주신다.
비록 공의회의 가르침을 잘못 해석하고 잘못 이해 했을지라도 선의의 많은 신자들과 사제들로 하여금 공의회의 가르침을 옳게 알아들을 은총을 주었다. 특히 평신자들의 교회의 헌신적인 협조는 마치 한국초대교회의 신자들과 같이 오늘도 역시 열성적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선의의 열성은 때로 잘못에 대해서도 열성적이 된다. 그릇된 열성이 낳은 잘못은 고칠길이 없다. 선의의 잘못이기 때문에 선의가 크면 클수록 잘못도 큰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가지는 문제점은 다음 호에 말하겠으나 우선 열성적인 신자들이 많기때문에 오늘의 교회는 은총의 교회가 되고 있다.
수많은 신학생ㆍ갈수록 늘어가는 수도성소와 더 많은 입교자들을 보면 확실히 한국은 많은 은총을 받았다.제 2차 바티깐 공의회가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 수용함으로 생기는 부작용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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