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성서에도 인생고에 대한 탄식과 반발과 절규가 점철되어있다.
우리는 구약의 가르침을 통하여 고통의 의미를 점차 깨닫게 되었고 신약의 계시로써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고통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 고대 구약인들은 고통을 죄악에 대한 응보라고 생각하였다. 세상의 모든 재앙의 근원은 원조의 범죄에 있고(창세3, 14~19)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 불충실하면 벌을 받고 하느님께 충실하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개인적으로 당하는 고통은 각자의 죄의 벌이라고 생각하였다.(창세12, 17~18).
시대가 이르면서 이스라엘 인들은 많은 경우에 착한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악인들이 오히려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경험하고서는 그들이 믿는 하느님의 공의(公義)하심과 현실세상의 반대현상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고민하였다.(욥기13, 22). 욥, 예레미아(12, 1~6) 하바꾹(3, 14~18)의 예를 들수가 있다.
유배시대부터 예언자들과 현자들은 차츰 고통의 원인이 반드시 인간의 죄악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의 일환임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고통은 인간을 그 허물에서 정화시키는 방법인데 마치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과 같고(예레9, 6:시편66, 10), 아들의 잘못을 교정하려는 아버지의 매질과 같은 것이고 (잠언3, 11~12 신명8, 5:Ⅱ역대32, 26), 더 큰불행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편이라고 (지혜4, 17~20) 생각하였다.
범죄의 결과가 아닌 고통은 가끔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인물들이 더 큰 인물로 성장하기 위하여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외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했던 아브라함(창세22장), 욥이 당한 그 많은 고통(욥ㆍ, 11:2, 5) 등이 좋은 예이다.
한 의인의 고통은 많은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다. 이사야 53장의 야훼의 종의 고난은 백성들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고 희생당하는 경우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그리스도에게 적중되었다.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에 의하여(사도3, 18) 인간구원을 위한 대속물(代贖物)이 되시기 위하여 (마태20, 28) 세상에 파견된 예수께서는 동포의 불신과 반대를 받았고(루까19, 41) 제자들의 배반을 당했으며(요한18, 15~18) 겟세마니 동산에서 단말마의 고통을 당하시고(마르14, 33~34) 십자가에 서는 『내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27, 46)하실만큼 처절하게 운명하셨다.
예수의 이 고통의 극치는 인간들의 죄를 대신 보속하고 인간을 속량하는 희생제사가 되신 것이었다.(히브9, 26ㆍ28).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전제조건이었다.
미리 말씀하신대로(마르8, 31:9, 31)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어 만백성을 당신의 백성으로 모으셨고(요한11, 52) 영광스럽게 부활하시어(사도2, 24)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사도2, 36)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었다(요한17.1).
이제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우리의 경우를 보자. 주님은『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가9, 23)고 가르치시고, 때로는 그리스도 때문에 세상의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요한15, 20:마태10, 24)예고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세례성사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영신적으로 부활하였으니(로마6, 3~8)『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기에』(갈라2, 20)그리스도인의 고통은 그분과 함께 당하는 고통이라(Ⅱ고린1, 7).
그러므로 신자가 신앙으로 고통을 받아들일 때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Ⅰ베드4, 13)우리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수난의 고통과 함께 성부께 바침으로써 우리와 타인의 구원에 이바지하는 것이다.(Ⅱ꼬4, 10)
고통은 우리의 죄를 보속하고 현세에 집착하지 않고 영생을 바라보게 하고 영원한 영광을 약속한다(로마8, 17). 그래서 복음선포를 위하여 천신만고를 겪은 바오로는 영생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차서(Ⅱ꼬4, 17 필립3, 10~11) 기쁨에 넘쳐 있었고 (Ⅱ꼬7, 4) 다른 사도들도 그러하였다.(사도5, 41).
하느님께 우리에게 어떤 고통을 허락하실 때에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은총도 아울러 주신다. 바오로가 고통에 짖눌려서 그것을 면해 주시기를 청할 때마다 주님께서는『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내 권능은 약한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하고 번번히 말씀하셨다(Ⅱ꼬12, 9). 이런 은총에 힘입어 그는『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꺼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골로1, 24)할 수 있었다.
사도들의 이러한 가르침과 실천은 주님의 산상설교의 (마태5, 3~10)정신을 구현한 것이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면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받을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마태5, 12)
인생고에 대하여 고래로 많은 사상가들이 연구했지만 그것은 깊은 신비에 싸인 현실이기에 계시의 빛으로써만 다소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성서의 가르침을 종합해 보면, 첫째 많은 경우에 인간의 죄악이 고통의 원인이고, 인간은 고통을 체험하면서 죄악의 중대함을 깨닫는다.
둘째, 고통의 다른 원인은 하느님의 구원적 섭리이다. 고통으로 인간은 죄를 보속하고 세속에서 정화되고 영생을 지향하게 된다. 그래서 고통은 하느님의 인간교육방법의 하나이다.
셋째, 신앙인의 고통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동참하여 자신과 타인의 구원에 이바지한다.
넷째, 신앙인의 고통은 우리가 받을 천상영복의 보증이 된다.
다섯째, 하느님은 고통과 함께 극섯을 감당할 은총도 주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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