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이 희생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꺼려하지만 한인혜(61ㆍ루시아)씨의 경우는 더욱 완강하다.
그것은 육순의 나이에 뛰어든 새로운 삶이 결코 희생의 바탕위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삶의 귀결로 이뤄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부천시 성가 양로원에서 노환으로 고생하는 노인들의 간병, 대소변처리, 목욕, 빨래 등 젊은 사람도 힘들어 하는 고된 잡무를 조금도 힘든 기색없이 처리하고 있는 한씨는 자신도 환갑이 지난 할머니이지만 구순노인의 딸로서 때로는 칠순노인의 다정한 말벗으로서 양로원내 조그만 빛이되고 있다.
「희생적」이라는 수식어를 극구 부인하는 한씨가 이들 외로운 노인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84년 10월.
아들내외의 극진한 봉양을 마다하고 홀로 양로원 근처에 전세방을 얻어 육순나이에 처음으로 봉사생활을 시작할때 만해도 한씨는 손에 물한번 제대로 안 묻혀본 소위 전형적인「안방마님」이었다.
가정부를 둘 정도로 윤택한 생활을 해온 한씨가「삶의 귀결」이라고 생각하면 섬기는 자들의 모습으로 돌아선데는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로서 뜨거운 모성애와 삶에 지친 노인들의 모습을 지나치지 못하는 작은 사랑의 마음이 그 요인이 될 수 있었다.
4남매중 막내아들(군종신부)과 막내딸(수녀)을 구도의 길로 보내면서 진정 부모로서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느냐고 늘 반문해온 한씨는 수련과정 중 아들, 딸이 괴로와하거나 갈등을 느낄때 그것은 바로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었다고 괴로와 했었다.
그러한 느낌은 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사제로 서품된 막내아들의 첫미사에서 더욱 강하게 느낄수 있었다고 한다. 미사도중 이상하게 어깨가 무거워져 견디기가 힘들었다는 한씨는『이것은 아들과 함게 십자가를 지고 가라는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여 그 순간부터 섬기는 자의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토로했다.
비록 늦은 나이였지만 이제라도 늦지않았다고 생각한 한씨는 자신을 바칠 마땅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한씨는 3년전 남편이 타계하기까지 남편의 병환을 수발해오던 기억을 되살렸다. 순간 노후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불우 노인들을 위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한씨는 신병정리후, 낯설은 객지로 홀로 떠나갔다. 그곳이 현재 약 2년간 봉사해오고있는 성가양로원이다.
『처음엔 대소변을 치우는 일이 가장 힘들었는데 흑히 혈육도 아닌 타인의 빨래에서 온갖 역겨운 냄새가 풍겨나올때는 무척 참기어려웠다』고 토로하면서『시간이 흘러 어느정도 익숙해지자 빨래 목욕 등 노력봉사보다 외로운 노인들의 말벗이 되는것이 오히려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직도 바느질이 익숙하지 못해 어떤때는 화가 울컥 치민다』는 한씨는 이제는 성호를 긋고 몇번씩이나 뜯고 다시 꿰매는데 익숙해 있다.
아들딸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자신은 두남매의 순탄한 성직ㆍ수도생활을 위해 봉헌했다는 한씨는 『누구나 다할수 있는일을 늙었다는 이유로 못할리는 없다』면서 작은 일이 너무큰일로 과장돼 가장 작은 자유마저도 구속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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